[교육칼럼] AI시대의 교사 역할 변화
[교육칼럼] AI시대의 교사 역할 변화
  • 광양뉴스
  • 승인 2024.05.17 17:40
  • 호수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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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전 광양여중 교장 / 교육칼럼니스트
김광섭전 광양여중 교장 / 교육칼럼니스트

현대 사회의 직업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직업에 대한 인간의 진로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선사시대와 계급사회에서는 어린아이가 장차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예측하는 것이 비교적 쉬웠다. 가정을 중심으로 부모로부터 세습의 규칙이 비교적 분명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에 공장제도가 발달하면서 분업체계가 단순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분야만 충실히 수행하면 직업 수행을 잘했다고 평가받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는 상황이 훨씬 복잡하다. 

현대 경제체제에서는 직업의 수가 많고 이에 따라 개인의 선택을 중요시 하고, 사회적 평판이 판을 가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우리의 직업 이데올로기에 의해 장려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 더욱 심각하다. 대학입시인 수능점수로 획일화된 한국사회는 사회적 가치나 개인의 신념 차원을 넘어 점수가 높은 학생들은 대부분이 의대를 지망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의사가 지위권력에 속한다면 과학자나 교사는 창조권력에 속하는데 어려서부터 가치 지향성이 충분하게 몸에 습득되어 있다면 대학을 다니다가 자기 전공을 포기하고 의대로 진학이 쏠리는 현상은 완화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현대사회에서도 교사들은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여전히 인식되고 있다. 

가르치는 일이 특별한 ‘도덕적 가치를 가진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비스로서의 교직은 종교적인 측면과 현실적인 측면 모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카톨릭교회 내에서도 교직은 수세기 동안 명예로운 직업으로 여겨져 왔다. 유태인의 전통에는 배우는 것에 대한 사랑이 깊이 스며 있다. 미국인들은 직업의 순위를 서비스의 관점에서 매김으로써 서비스의 이상을 현실로 구현시키는 직업을 존경한다. 

우리 교사들은 “어떻게, 무엇을 가르칠까?”라는 일에 몰두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문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교육의 본질을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결과 아이들에게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교사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가르침을 통해 학생들이 만족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의 가르침을 내가 스스로 즐기고 내가 만족하는가?”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한 자긍심이 없이는 자신의 권위가 남에 의하여 침해당할 경우 견디기 어려운 모멸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채용하고 있는 교육제도는 유럽에서 제도화된 카톨릭 제도를 모방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교사는 성경 기록에 의하면 사도, 선지자 다음으로 뚜렷한 자리다. 

‘하나님이 교회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기록되어 있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임강사는 자기도 모르는 것을 가르치고, 조교수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과 그 이상을 가르친다. 그리고 부교수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치고, 정교수는 그의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교직에 입직한 지 수 년이 지났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전임강사 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교사는 부단히 공부가 필요하다. 

생성형 AI의 보급으로 인간을 대신한 대화형 AI활용으로 가르치는 분야에서 교사의 독점적 권위는 위협을 받을 것이다. 

인간의 창의성을 보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교사는 정보의 비판적 능력을 스스로 겸비하고 모든 가르치는 것을 진실로 믿는 고정된 관념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따라서 교사는 끊임없이 학생들로 하여금 무엇을 생각하고 실천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존재로 살아갈 때 교사의 역할은 분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