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한국인 (서종탁)
세계속의 한국인 (서종탁)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10:38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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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탁 / 전 광양교육장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 시를 휩슬고 간 후유증이 큰 것 같다. 세계 최대 강국으로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를 돕기만 하다가 5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복구비만 해도 2천억 달러나 소요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어 세계 여러 나라의 도움을 받게 되었으니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국가 상층부가 허리케인이 밀려올 무렵 휴가를 즐기면서 그 위협을 과소 평가 했고 사건 발생 후에도 이틀이 지난 뒤에서야 ‘국가적으로 중대한 재난’으로 규정하면서 며칠동안 방치했기 때문에 “미국의 수치. 부시의 무능력. 인종 차별의 극치를 보여줌. 자연재해와 서투른 관료주의의 결합…”등 국내외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또한 피해지역인 멕시코만은 미국 원유 시설의 30%가 있는 곳이기에 향후 미국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끼칠 영향도 심각한 상태로 보고 있다.

미국은 일제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고 6·25전쟁 때는 수만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우리를 지켜주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군대를 상주시키면서 우리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피로서 맺은 맹방으로 생각하면서 그 은혜를 고맙게 생각해 왔고 한편은 우리가 가난할 때 세계 제일의 부자 나라로서 미국을 동경하기도 했다.

지금은 국제화 시대로 미국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젊은 세대에서는 반미 감정까지 확산되고 있어 미국에 대한 신비는 사라지고 있지만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미국은 우리를 지켜준 고마운 나라, 우리는 찢어지게 가난한데 미국은 부자의 나라, 우리는 거짓말을 잘 하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후진국이지만 미국은 질서를 잘 지키고 정직하고 거지도 없고 깨끗하고 살기좋은 나라…” 이렇게 듣고 배웠다.

그 신비가 하나 하나 벗겨 지면서 그 실체가 들어나고 있지만 아무튼 미국 사회는 아직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라인 것 같다.

지난 여름에 약 20일간에 걸쳐 미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미국에 대한 새로운 면을 몇가지 느낄 수 있었다.

첫째, 입국심사가 까다롭다는 이야기는 사전에 알았고 이는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이라고 이해했지만 검사대에서 구두를 벗고 맨발로 들어가게 하고 양쪽 손가락의 지문을 찍고 사진까지 찍는데는 마치 예비 범죄자 취급을 받는 기분이었다.

“기왕에 사진을 찍으려면 예쁘게 잘 찍어 주세요.” 하면서 언짢은 기분을 농담으로 얼버부리며 근엄한 표정인 입국심사관을 웃게 해 주었지만 아무튼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둘째, 애틀란타에 도착하여 템파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티케팅을 할 때이다. 우리 일행은 7명으로 사전예약이 되었으므로 좌석 배정만 받으면 되는데 공항 직원의 미숙한  일처리 때문에 시간이 30분이나 소요되었다. 40대 쯤 돼 보이는 흑인 남자가 검지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기를 간신히 두드려대는 통에 일처리가 늦어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유치원생에서 부터 농촌의 농민까지 컴퓨터를 익숙하게 다루지만 세계 최대 강국의 공항에 근무하는 직원이 컴퓨터 하나 제대로 조작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셋째, 한국에서 예매를 할 때에는 템파행 비행기 시간이 13시 40분이었는데 현지에 와 보니 14시 30분으로 되어 있었다. 모니터에도  계속 14시 30분으로 안내되었는데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이 비행기는 16시에 출발하는 것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다, 미안하다는 안내방송 한마디도 없었다. 중국에서는 비행 시간이 지연되는 것을 보았지만 최선진국인 미국에서 이처럼 시간이 지연되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기다리는 승객들도 불평 한마디 없었고 핸드마이크를 들고 소리를 질러대는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번호대로 줄을 서서 움직였다. 우리 나라 같으면 ‘왜 지연 되느냐? 사과를 해라.’하고 아우성일 텐데 초등학생처럼 말없이 순종만 하는 미국 사람들을 이해 할 수 없었다.

넷째, 세계 각국은 표준 도량형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자기들 고유의 도량형을 쓰고 있어 여행객이 무척 불편하였다.  도로표지판도 ‘미터’나 ‘킬로미터’가 아닌 ‘마일’을 쓰고 있고 무게나 부피도 ‘파운드’, ‘온스’, ‘개론’ 등을 쓰고 있었다. 만일 우리 나라의 고속도로의 표지판에 ‘서울1천자 5백캄하는 식으로 표시해 놓았다면 어떻게 될까? 외국인들은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으리라고 본다.

강대국의 오만함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느껴졌다.
우리가 머물다 온 템파시는 인구가 40만쯤 되는 도시인데 한국 교민은 1만명쯤 된다고 했다. 대학교수, 식당, 슈퍼, 자동차정비, 꽃집, 청소부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세계속의 한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우리 교민들도 8명이 실종되고 1천1백여명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하루 빨리 재해를 극복하고 일어서서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들이 더욱 건강하고, 굳세게 살아주기를 기원한다.
 

입력 : 2005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