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발언대 - “쌀 한 톨, 밥알 한 알”
이슈발언대 - “쌀 한 톨, 밥알 한 알”
  • 광양신문
  • 승인 2006.10.11 19:57
  • 호수 1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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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쓰레기 줄이기 운동에 부쳐 -
고 근 성 광양시청 문화홍보담당관실
'밥'을 국어사전에서는 '쌀이나 보리쌀 등의 곡식을 익혀서 끼니로 때우는 음식'이라고 적고 있다. 이처럼 끼니로 때우는 음식이니만큼 '밥'이나 '쌀'을 우리의 삶에 연관지은 표현도 여러 가지다.

흔히 직장을 잃는 것을 "밥자리를 잃었다", "밥줄이 끊겼다"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죽는 것을 "밥숟갈 놓는다"라고 하고, 가난한 집의 집안 형편을 "밥술 뜨기도 어렵다"라고 말한다.

또한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사람이나 사물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찬밥 신세'라 하며, '밥'의 위력을 나타내는 말로 "밥이 보약이다", "밥알 한 알이 귀신 열을 쫓는다"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밥'이나 '쌀'을 참으로 애지중지하게 여겼다.

"밥알 한 알을 흘리면 천벌을 받는다"라든지, "부녀자가 챙이질을 할 때 쌀을 흘리면 남편이 바람이 난다"는 말, "쌀을 밟으면 발목이 비틀어진다"는 말은 조상들이 '밥'과 '쌀'에 대해 얼마만큼 애착을 가졌는지를 잘 말해준다.

선조들은 또 마치 어린아이를 보살피고 양육하듯이 농사를 지었다.

"쌀 한 톨이 우리 밥상에 오르려면 농부가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말과 "나락 한 톨이 생산되기까지는 예순여덟 번의 손이 간다"는 말, "나락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다"는 말은 우리 조상들이 '쌀농사'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여 왔는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지금 이렇듯 소중한 우리의 '쌀'이 위기에 처해 있고, 우리의 '밥'이 천대를 받고 있다. 지난 1994년 우리나라는 우루과이라운드협정에 따라 쌀의 관세화, 즉 수입 자유화를 10년간 유예하는 조건으로 일정 규모의 외국 쌀 수입을 의무화 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4년부터 우리나라는 국내 쌀 시장 개방 확대를 둘러싼 국제 협상의 도마 위에 올라 아직까지도 정부는 물론 온 농업인이 긴장과 갈등과 시름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정부는 쌀 수입 자유화 유예기간을 2014년까지 10년간 연장하는 대신 의무수입물량을 국내 소비량의 4~7.96%까지 연차적으로 늘리기로 하는 쌀 협상안을 타결지은 바 있다.

쌀 시장 개방은 이미 10년 전부터 예고된 것으로 정부는 쌀 협상 비준안을 올해에 처리하지 않으면 이 협상이 무효가 돼 내년부터는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외국 쌀'의 대량 유입으로 농가의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것이 정부의 입장이라면 농업인의 입장은 어떨까?

농업인구는 30년 전 1300만 명에서 지금은 350만명으로 줄었다. 여기에다가 쌀 관세화다, 공공비축제의 수매가 하락이다 해서 여러 요인들이 농업인들을 옥죄고 있다.

20마지기 농사를 짓느라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한 결과가 오히려 92만 원의 적자였다는 나주시의 한 농부에게는 '쌀 한 톨'이 마치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는 철천지원수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우리의 '밥'도 서럽기는 마찬가지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을 보면 1990년에 119.6kg에 달했던 것이 10년 후인 2000년에는 93.6kg, 2004년에는 82.1kg으로 갈수록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밥'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핵가족화로 식생활문화가 인스턴트식품과 빵, 피자 등 대체식품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데다가 바쁜 직장생활과 이른바 '참살이' 열풍에 의한 다이어트 등으로 결식이 잦아지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한 알을 흘리면 천벌을 받는다는 우리의 '밥'이 더욱 안쓰러운 것은 가정과 식당에서 잔반으로 전락하기 일쑤고 가축의 사료로 쓰였던 옛날과는 달리 다른 음식 찌꺼기와 함께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는 1만3550톤에 이르고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15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 음식문화가 얼마나 허례허식에 젖어 있는지 짐작 할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시가 다른 자치단체를 탓할 처지는 못 된다. 위생처리장으로 반입되는 양을 기준으로 할 때 광양시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생활쓰레기양은 약 99톤, 이중 음식물쓰레기가 28톤에 이르고 있으며 1일 생활쓰레기 처리비용만 해도 3천만 원 가량이 소요된다.

문제는 일반쓰레기는 말할 것도 없이 적게 만들고, 적게 시키고, 적게 담아서 남기지 않으면 얼마든지 음식물쓰레기를 줄일 수가 있는데도 쓰레기 발생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

이에 정부의 「음식문화 개선 및 음식물류 폐기물 종합대책」이라는 처방에 앞서 우리 시갭쓰레기를 줄여서 지역 인재를 육성하자」는 취지 아래 2007년까지 쓰레기 발생량 10% 감량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본다.

현재 시에서는 전 시민을 대상으로 쓰레기 줄이기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한편 전 공무원이 쓰레기 감량 책임구역 관리와 쓰레기 수거작업 현장 체험에 나서는 등 5개 분야에 22개 시책을 마련해 행정력을 집주하고 있다.

물론 이 시책이 성공을 거두어 쓰레기 처리비용이 지역 인재 육성에 투입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민 스스로의 쓰레기 발생량을 줄여야겠다는 실천의지와 노력이 뒤따라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정부의 양곡정책이 양 위주에서 질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지역 특성을 접목시킨 '브랜드 쌀'의 인기는 그칠 줄 모르고 농촌진흥청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탑 라이스'를 생산해 지난 19일부터 시판에 들어갔다.

이제 우리 농업도 과거 정부의 보호막 속에서 자라온 백화점식 농업에서 디지털시대에 부응하는 차별화된 농업으로 바뀌어야 하는 시점에 다다랐다. 영농(營農)이 아닌 상농(商農)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은 우리의 '쌀'과 '밥'이 안고 있는 문제가 비단 정부와 농업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 나가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사실이다.

'수입 쌀'보다는 우리 농업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 '국내 쌀'을 애용하고, 인스턴트식품보다는 '한 알이 귀신 열을 쫓는다'는 우리의 '밥'을 먹고 귀히 여기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쌀'과 '밥', 나아가 '환경'을 지키는 길이라고 본다.

창간 6주년 특별기획으로 '생활쓰레기를 줄입시다.' - 범시민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광양신문에 공직자의 한사람으로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맺는다.
 
입력 : 2005년 1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