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바보들의 행진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09:27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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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나는 초등학교 학생이었다. 우리 집은 종가이기 때문에 삼촌. 고모님들과 함께 살았는데, 5일 만에 한 번 열리는 장날이면 어머님은 항상 짐을 들고 올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를 데리고 가곤 하셨다.

당시는 정말 어머님이 어린 나를 짐꾼이 필요하여 데리고 가신 것으로 생각했는데, 훗날 성장하여서야 비로소 ‘자식에게만 돼지고기라도 배불리 먹여주고 싶어서 데리고 다니셨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려서는 ‘어머니는 고기를 드실 줄 모르는 분’으로 알았는데, 이제 내가 음식점에 가면 나는 고기를 구울 줄은 알아도 잘 먹을 줄은 모르는, 쇠주만 잘 마시는 사람이 된다.

세상의 어떤 부모가 자비의 마음으로 자식을 돌보지 않으리오? 어떤 모진 부모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어 고생시키고 싶겠는가? 혹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다고 비난받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혹 일제 강점기에 검찰서기 등의 지위를 얻어 정신대를 모으는 데 앞장 선 공로로, 자신은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자식은 잘 교육하여 출세시켰다면, 그가 비난받는 것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정의가 밥 먹여주나?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가 되거나, 독재시대에 민주투사가 되어 결국은 불구의 몸이 되고, 또한 그것 때문에 자식들은 숨어 살아야 했기에 거의 패인이 되었다면, 그는 마땅히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으니 비난받아야 마땅한데도, 왜 우리는 그런 얼간이를 존경하는가?

이것도 저것도 어차피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인 것 같으니 그저 그날그날을 걱정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사회는 그것마저도 날 평화롭게 놓아 두지를 않는다.

각종 모임에 나가면 가급적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결국은 참을 수 없어서 말하게 되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 오늘도 말이 많고 말았다고 후회한다.

내가 아니라도 할 사람이 많으니 가급적 말없이 그들의 뜻을 좇으려고 하지만 매번 실패하곤 한다. 원칙도 도덕도 없다. 고고한 사람들의 인격적인 대화장소임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저 힘센 놈이 이기는 약육강식의 현장일 뿐이다. 그것도 벼슬이라고….

사실 힘이 세지도 능력이 있지도 않다. 그저 큰 힘을 등에 없고 자신이 힘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없는 능력을 과대포장하기 위하여 남과 경쟁을 할 때는 남의 발목을 꺾어버린다.

정상적인 조건으로 경쟁하면 이길 수 없다. 따라서 남의 발목을 꺾어 놓고 100m 출발점에 서서 출발하려고 한다.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어떻게 당당하게 이기느냐’하는 것은 무능한 얼간이나 하는 소리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비열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능력이 있다고 추켜세우기도 하고, 겉으로는 그들을 비난하지만 사실은 마음 속으로 그들의 대열에 서려고 안달이다.

사람은 적당히 자극을 받아야 한다. 대충 아무렇게 살아도 남이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다면 노력할 이유가 없고, 노력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따라서 정당한 조건의 경쟁이 아니면 결국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당당하게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만 홀로 일제 앞잡이가 되어 다른 사람보다 좋은 조건에서 경쟁하겠다는 심보와 같은 것이다. 결국 그들의 말로는 발전이 아니고 파멸이 있을 뿐이다.
 
입력 : 2004년 12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