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교회가 걸어온 100년
대방교회가 걸어온 100년
  • 이수영
  • 승인 2008.05.07 20:29
  • 호수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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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교회는 1906년 봄 야소교(크리스트교)를 접한 대방동의 서한옥(당시 25세)씨가 그의 형 한봉과 정기영 씨를 전도하면서부터. 이후 이들 세 가정은 진상면 신황리 교회를 다니면서 마을 사람들을 전도해 신도들이 늘자 1908년 5월10일 용곡리 349번지 한문 학당을 사들여 ‘대방동교회’로 창립예배를 드린 것이 시작이다.

이후 신도가 급격히 늘어 옆 150번지 초가산간을 사들여 교회로 개조, 1920년 11월15일 봉헌에 이른다. 한문학당 예배장소는 사택으로 쓰였다. 그러나 초가 건물이 낡아 선교부 도움으로 82.645㎡(25평)규모의 석조 건물에 지붕은 함석으로 건축돼 1925년 11월 20일 봉헌에 이른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일제의 착취와 수탈로 농촌이 쇠퇴하고 살기 어려워지면서 교회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교인도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1945년 해방 후 집에서 기도를 하던 신도들이 옥룡 전 지역에서 몰려 들었다.

이에 대방교회는 옥룡의 중앙 지점인 운평리에 대지를 사들여 1957년 4월 10일 답15번지에 165.29㎡(50평)규모의 교회를 건축한다. 대방교회 초창기 역사의 특징적이고 자랑할 만한 일은 교인이 줄고 시련과 역경에 처했던 시기에 단 한차례도 예배가 중단된 적 없이 계속되었으며, 목회자 또한 1~4대까지는 조사가 예배를 인도했고 이후 조상학 목사와 조사와 전도사, 강도사 목사로 이어지는 믿음으로 줄기차게 신앙을 지키고 교회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해방 후 대방교회는 옥룡면 전 지역에서 신도들이 몰려 들자  옥룡의 중앙 지점인 운평리에 대지를 사들여 165.29㎡(50평)규모로 건축된다. 이후 대방교회는 뜨겁게 부흥하여 성장을 이루었으며 그 부흥의 여세로 1993년에 교회당을 신축하였고 2002년 8월 30일 태풍 루사로 교회 위치가 하천에 편입돼 현 위치인 운평리 22-4번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1553.72㎡(470평)규모로 지어졌다.

역대 장로는 1920년 11월 15일 피택된 서한봉·정기영, 1958년 3월 13일 이태의·김성주, 1960년 11월 20일 이병주, 1976년 3월 30일 박상만·이병원, 1985년 4월 24일 강대언, 1994년 10월 3일 서정화·이춘삼·서인현, 2005년 1월 23일 문양호·이삼식 장로를 배출했다. 정은채 목사는 2003년 부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