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숙환으로, 향년 83세
곽만길 옹은 1924년 10월16일 진월면 선소마을에서 태어나 1940년을 전후해 선소리패 일환으로 괭과리를 다루며 잡가와 선소리에 심취했다.
전라도가 그렇듯 육자배기 몇마디 할줄 모르면 놀이판에 끼지 못하는 당시 시대적 상황은 곽옹의 주무대였다.
왜냐면 놀이판이 벌어지면 으레 소리판이 되고 소리를 했다하면 그 지방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민요였기 때문이다.
이때 고 곽만길 선생은
에~헤/
나비야 청산을 가자/
호랑나비야 너도가자/
가다가 저물며는/
꽃밭속에나 자고 가고/
꽃밭속에 목자고 가면/
님의 품안에 자고 가세/
-청춘가 중에서-
를 목청껏 불러 모여든 청중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그는 건강이 좋았던 최근까지 상여가 나갈 때 그가 보유하고 있던 상여소리 ‘어화놈차’를 선창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많아 그의 타계소식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다행히 그의 생전 육성은 지난 92년 순천대학교박물관이 광양지역 민요를 조사하면서 녹음과 함께 악보를 만들어 출간해 그나마 다행이지만 우리지역 읍면동의 민요를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소리꾼들은 광양시의 무관심속에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한편 고 곽만길 선생은 슬하에 2남4녀를 두고 있으며 차남 곽규석(44)씨가 진월면체육회 상임부회장이다.
이때 고 곽만길 선생은
에~헤/
나비야 청산을 가자/
호랑나비야 너도가자/
가다가 저물며는/
꽃밭속에나 자고 가고/
꽃밭속에 목자고 가면/
님의 품안에 자고 가세/
-청춘가 중에서-
를 목청껏 불러 모여든 청중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그는 건강이 좋았던 최근까지 상여가 나갈 때 그가 보유하고 있던 상여소리 ‘어화놈차’를 선창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많아 그의 타계소식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다행히 그의 생전 육성은 지난 92년 순천대학교박물관이 광양지역 민요를 조사하면서 녹음과 함께 악보를 만들어 출간해 그나마 다행이지만 우리지역 읍면동의 민요를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소리꾼들은 광양시의 무관심속에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한편 고 곽만길 선생은 슬하에 2남4녀를 두고 있으며 차남 곽규석(44)씨가 진월면체육회 상임부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