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편 - 민생고의 급한 쉼터
수필 한편 - 민생고의 급한 쉼터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11:31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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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자 / 광양문인협회회원
차를 타고 긴 여행을 하다보면 잠시 쉬어 가는 휴게소가 중간 중간 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손님들이 들러서 가는 또 하나의 작은 나 홀로 쉼터가 있다. 새로 조성된 서해안 도로 시설과 함께 마련된 공중이 이용하는 그 장소가 으리번쩍하게 닦여져 있다. 일명 뒷간이라고 칭하는 그곳이 악취 아닌 향취가 후각에 와 닫는다.

공중이 이용하는 장 속에 나만이 소유하는 좁은 공간에 예쁜 캐릭터 그림글귀가 시안으로 신호등처럼 환하게 번져온다. “좋은 님이 머물다 간 자리는 아름답습니다”라는 짧은글이, 거리에 감시카메라보다 깊은 주의를 주는 명언의 단어이다.

언제부터 우리 사는 세상이 이처럼 좋아 졌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시로 길을 나서면 급하게 필요한 그 문은 철통으로 차단 해 놓은 데가 다반사였다.

생각은 기억을 더듬어 속을 메스껍게 했던 옛 추억으로 향하고 있었다. 젊은 날 조그만 장사를 할 때 일이다. 한 건물 안에 상점은 다섯 집인데 볼일을 보는 그곳은 두 칸뿐이었다.
나보다 앞서부터 가게를 하는 그들은 건물 뒤 안쪽 흠이진 곳에 있는 그 문을 자물통으로 통제구역을 해놓고 살고 있었다. 어쩌다 급한 상황이 되어 달려가 보면 밤사이 옆집 음식점 손님들이 쏟아놓은 오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광경에는 오만상이 찡그려지고 먹은 게 넘어 오려했다.

그때 집주인이 선심 쓰듯 내어준 열쇠는 녹이 슬어 얼른 따지지도 않았다. 그럴 때 절박한 생리의 고통은 화를 초래했다. 평소에 깔끔한 나 자신은 아니지만 나날을 그냥 지날 수는 없었다. 가게 창을 열기 전에 뒤쪽을 치워야했다.

그러는 내 수고가 이웃에게도 손님에게도 큰 의미가 없는 걸 깨달았다. 문제는 개방하지 않는 화장실문이었다. 하고자 하는 일의 목적지인 벽이 꼼짝 안하니, 인적이 드문 음침한 벽 뒤에 지니고 간 그것을 쏟아놓는 현실이었다.

생각 끝에 문제의 그곳을 오픈 해 두자는 제의를 이웃들에게 했다. 통닭집도, 자장면집도 하나같이 웃어버렸다. 꼭꼭 잠가놓아도 그 모양인데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것이다. 하지만 열어놓아야 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겨우 한 칸만을 따놓자는 합의를 보았다.

처음엔 뒷간을 터놓자는 목소리를 높인 결과로 이웃 상인들의 화재거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떠돌이 걸인까지 얼마나 드나들지, 볼만할 거라고”하는 말이 등 뒤에서 들렸다. 그러나 확실하게 드나들 수 있는 혼자 쓰는 그곳은 그 후론 문밖에까지 치울 일이 거의 없었다.

먹을거리 장사를 하면서 배불리 먹고 가길 바라는 장사 집에서, 급해서 거길 갔을 때, 꼭 잠긴 자물통이 황당함을 보여줄 때 , 주위의 눈치를 살펴 그 일을 해결하는 것은 관용적인 사실임을 지명할 것이다.

어린시절 우리부모님은 어려운 농촌살림을 하시면서도 행상을 하는 아주머니나 떠돌이 엿장수 아저씨에게도, 밥 먹이고 잠재워 주는 일을 일상처럼 하셨음을 보았다.
시대 변천과 함께 생존경쟁의 현실에 따라 나 자신도 우리부모님처럼 남에게 후한 인심은 베풀지 못한다.
길을 걷다 어쩌다 배고픔의 인내보다 절박한 볼 일이 생길 때 그 일을 해결 하고 간다면 그 일이야말로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울 것이다.

일상에서 어쩌다 나그네 되어 쉬어가야 하는 급한 일 그 일이야말로 남성들은 여성과 달라 쉽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성들이야말로 그 문이 오픈 되어 있을 때 구세주를 만난 듯 이 보다 고마운 일이 또 있겠는가! 남에게 밥을 주는 일도, 잠을 재워주는 일도 아닌 일이 아닌가!
세상은 각박할지 몰라도 우리네 문화시설은 급성장을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지방에 따라 그 시설 차이가 있겠지만 가는 곳마다 잘 갖추어져 있다. 가까운 공원이나 체육시설 광장에도 그곳을 찾는 이마다 불편하지 않게 두루마리 화장지 준비까지 설치해 놓았다. 이에 집집마다 사람마다 문화생활과 교육수준도 고차원적이다.

한집에 두 개의 화장실 시설에 자동차도 두세대나 있는 가정도 있다. 그 옛날 재래식 변소간은 전설의 고향의 이야기 제목이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도 소규모 음식점이나 찻집에는 그 문을 차단해놓고 손님이 찾으면, 후한 인심이나 쓰는 것처럼 찬바람을 보이며 키를 내어주는 업주도 더러 있다. 그런 분을 대할 때 나는 어떻게 자기 집에 오신 손님들에게 불편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일을 하느냐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얼마 전 차를 운전하고 어느 지역에 화장실이 새로 조성되어 있다싶어 그곳에 이르니 빛 좋은 개살구처럼 건물만 조성해놓고 문은 잠근 채로 냉기를 내는 지방의 인심을 볼 때 때로는 끼니를 때우는 일보다 중요한 민생고 해결의 일원임을 실감한다.

인제는 우리도 사회 발전에 맞추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느 상점, 어느 가정이라도 화장실 한번쯤은 쉽게 이용하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입력 : 2005년 1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