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이혼 당하지 않으려면
국민에게 이혼 당하지 않으려면
  • 한관호
  • 승인 2009.01.07 19:03
  • 호수 2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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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2살, 5살인 형제가 남도 아닌 아버지로부터 두들겨 맞고 심지어 가위나 칼로 위협당하기도 했다. 아내는 아이들 장래 때문에 참고 살았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평소에는 그렇게 자상한데 술만 마시면 그런다고 한숨이다. 
지난 6일, 에스비에스 ‘긴급출동 에스오에스 24’에 나온 한 가족의 사연이다.

그 방송을 보면서 한 후배가 떠올랐다.
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시를 참 맛깔스럽게 쓰던 후배, 우리는 참글문학회란 노동자 문학회에서 같이 활동했다. 그는 학생 운동을 했으며 졸업하고도 대학 졸업에 걸 맞는 직장이 아닌 아주 작은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로 살고 있었다. 모두가 노동자인 참글문학회인지라 우리는  일을 마치고 저녁에 만나 문학을 공부하고 습작을 하고 서로가 쓴 글을 평가하는 모임이었다. 일 년에 한번 씩 쌈짓돈을 모아 시, 수필, 소설 등을 책으로 묶어 내기도 했다.

그런 참글문학회원 중에서도 도드라지게 시를 잘 쓰던 그는 자상하고 늘 남을 먼저 배려하던 사람이라 회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짱이었다. 노동자가 이 세상의 주인이란 생각을 가졌던 그는 공장에서 만난 야물 딱진 여성과 결혼 했다. 우리는 평소 그가 보여주던 이미지대로 가족에게 참 좋은 남편, 자상한 아버지로 행복하게 잘 살겠거니 했다.

어느 날 저녁, 한참 토론중인 문학회 사무실에 그의 아내가 들어섰다. 온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든 몰골, 무슨 사고라도 당했나 걱정하는 데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냈다. 이제는 더 이상 못 살겠다고 했다. 신혼 초부터 술만 마시면 두들겨 팬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중졸 학력이 전부였다. 대학을 졸업한 남편과 결혼을 한 터라 마음 한편으론 늘 학력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신분(?)이 불만인가 보다 하면서 부부란 게 살 붙이고 살다보면 달라지겠거니 했단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폭력, 견디다 못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찾아 왔노라며 서럽게 울었다.

남녀평등, 민주주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글로 말로 생활로 실천하던 그, 우리는 충격에 빠졌다. 당장 문학회에서 제명해야 한다며 흥분하는 회원들에게 부부 관계는 남이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 일단 당사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했다. 무척 불편한 얼굴로 우리와 마주한 그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털어놓았다. 어머니가 평생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어머니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결혼하면 정말 아내에게 잘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단다. 헌데 어느 날 문득 보니, 그렇게 경멸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의 자화상이더란다. 그는 아내에게 반성문을 쓰며 각서를 쓰며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하는데도 술만 취하면 이성을 잃는다고 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서 가던 그, 얼마 후 후배 부부는 남남이 되었다. 서울로 간 그는 제법 잘 나가는 논술 과외 교사가 되어 돈도 잘 벌고 재혼도 해 행복하게 잘 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그렇게 평온하게 살고 있는 데 그의 아내였던 여성은 회사를 다니며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가해자는 다리 뻗고 자는데 피해자는 쪼그려 잔다는 이야기가 새삼 서럽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성장 과정에서 겪는 문화가 대물림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정적인 부모의 모습을 따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했다. 그런가.

어느 날 아내에게 혼이 났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담배를 피우는 데 이게 모두 애연가인 아버지를 보고 자란 것 때문이니 당장 담배를 끊으라고 성화였다. 아내, 이모, 심지어 아들이 잘 따르는 학교 선배까지 나서서 아들을 설득, 담배를 끊게 했다고 한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하나뿐인 아들에게 정말로 흡연 DNA가 유전된 게 아닌가 걱정이었다. 
지난 6일, 제대로 된 심의도 국민적 논의도 없이 85개 법안을 무조건 밀어붙이려던 한나라당의 시도가 불발에 그쳤다. 필자가 자주 가는 미성복집에 ‘하면 된다’는 붓글씨가 걸려있다. 이처럼 아직도 우리 사회는 하면 된다는 군부독재시절, 그 이전의 나랏님 말씀이 곧 법이던 군주시대의 습성이 여전히 대물림되는 상황이다.

법을 지키라고 하면서 절차를 따르지 않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 천박하기 그지없는 시국을 보면서 울화통으로 위장병을 호소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에스비에스 긴급출동에 방송됐던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는 알코올 의존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제발, 한국이란 가정의 평온을 위해 나쁜 습관은 고치고 살자. 국민에게 이혼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