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역사 흔적 찾기를 제안한다
광양시 역사 흔적 찾기를 제안한다
  • 최인철
  • 승인 2009.02.25 19:01
  • 호수 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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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남해읍 거리를 걷다보면 독특한 조형물들이 눈에 띤다.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남해군의 문화재와 유물, 특히 도심개발에 따라 지금 사라지고 없는 옛 건물들을 그 옛 터에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양조장이 있던 자리며 사진관, 역사인물 등 잊혀진 옛 것들이 남해군민들에게 성큼 되살아와 있는 것이다. 남해군민들은 그 거리를 거닐며 어떤 이는 추억을 회상하고 어떤 이는 기억에도 없는 옛날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다.

쉰 살을 넘긴 중년사내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양조장에 술 한 주전자 사들고 가던 코흘리개 꼬마아이가 호기심에 한 모금 마신 술에 비틀거리며 ‘갈지자’ 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 얻게 되는 소중한 추억인 셈이다.

한 시대는 그 시대의 욕망을 땅에 표현한다. 그래서 이 땅은 쓰고 덧쓰여진 양피지처럼 흔적과 얼룩을 갖게 된다. 그것이 역사다. 땅은 시대감각과 욕망에 따라 바뀐다. 한 시절의 것이 물러가고 새 것이 그것을 채운다.

그러나 인간은 새로운 것에 대한 창조 이면에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 하여 옛날 것과 지금의 것, 그리고 새것을 어떻게 공존시키느냐에 따라 한 도시가 깊은 울림이 있는 문화도시가 될 수도 있고 짙은 화장기만 남은 영혼 없는 도시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이 만드는 지상의 모든 장소는 그 존재 유무와는 별개로 기억을 잔영을 품고 있다. 건물이나 장소로 표현되는 이 같은 잔영은 삶의 기억과 체험, 일상이 쌓이면서 회귀하고 싶은 공간, 다시 체험하고 싶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런 장소를 만드는 필수적인 조건은 시간의 축적이며 장소성에 대한 식별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문화재 특히 건물은 한번 소실되면 영영 찾을 길이 없다. 기억의 잔영도 오래 남는 법이 아니어서 세대를 거칠수록 흔적마저 사라지기 십상이다. 흔적을 안고 있지 않는 세대는 그 존재의 구체적인 장소에 대한 식별능력이 결여되고 의식도 소멸된다.

지역문화는 그 장소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유해온 기억 역시 부서지는 파편과 함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가 고여 있는 회귀 공간을 부수고 바꾸는 작업을 섣불리 진행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억을 복원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간은 오직 어머니 품 같은 회귀공간에서만 우리가 누구인가를 되새기고, 기억을 통해 덧없이 사라지는 일회적인 삶을 다시 사는 기회를 갖고,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라는 자존을 찾고, 내일을 향한 힘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창조적 상상력과 행위로 이루어진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에도 창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행위는 결국 문화유산의 보전과 발전이며 이는 국민이 향유할 권리이기도 하다. 

광양시에 역사 흔적 찾기를 제안한다. 일례로 광양읍의 경우 현존하지 않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많은 흔적들이 있다. 광양읍성이 대표적이다. 동문과 서문 남문은 물론 동헌과 내동헌, 공용여행자들의 숙소인 객사, 관노들이 기거하던 관노청이나 교육을 담당하던 훈도청 등 수많은 기억의 편린들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 편린들은 복원하거나 재현해 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옛 터에 이를 설명하고 되새김할 수 있는 작업들은 가능하다. 문화유산의 보전과 발전은 가만히 있으면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