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살리자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살리자
  • 한관호
  • 승인 2009.03.04 19:34
  • 호수 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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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관호 바른지역언론연대 사무총장
‘비가 오나 눈이 오나 / 바람이 부나 / 그리웠던 30년 세월…’.
1980년대 중반, 중년들 몇이 모여 술이라도 한 순배 돌리고 나면 어김없이 불러 제치던 노래, ‘잃어버린 30년’이다. 실상 이 노래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절절이 대변하고 있어 술김에 부를 노래는 아니겠으나 어디서든 누구나 즐겨이 부르던 국민애창곡으로 사랑받았다. 서울 한 유흥업소에서 보조가수로 활동하던 부산 출신의 무명가수 설운도를 일약 국민가수로 부상시킨 이 노래가 탄생한 뒷이야기는 이렇다.

1983년 6월 30일, 케이비에스 방송 화면에 전 국민의 눈길이 몰렸다. 6.25때 헤어졌던 딸을 부둥켜안고 절규하는 아버지, 전쟁 통에 죽은 줄만 알았던 형제가 상봉장에서 흘리는 통한의 눈물이 하루 종일 여의도를 적셨다. 애초 2시간짜리 방송으로 기획된 이 프로는 철야방송으로 이어졌고 텔레비전을 보던 이들의 눈가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 방송을 보던 설운도가 작사가 박건호씨에게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가사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몇 시간 만에 완성된 가사에 남국인 씨가 몇 시간 만에 곡을 붙였고 그날 저녁부터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에는 ‘잃어버린 30년’이 설운도의 애절한 목소리를 타고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그 해 11월 14일까지 이어진 이 방송이 나올 때 마다, 회한으로 절규하는 이산가족이 부둥켜 안을 때 마다 ‘잃어버린 30년’이 흘렀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절절이 풀어 낸 이 노래가 나온 지도 어언 30여년, 그렇다면 이제 이산가족 상봉은 거진 마무리 됐을까.

불행히도 아직 9만여명이 가족을 못 만나고 있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까지 16회에 걸쳐 이뤄졌다. 1만6369명이 가족과 만났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부터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남북은 2007년 11월, 9차 적십자 회담에서 2008년에 500명의 가족상봉과 160가족 화상상봉, 120가족이 영상편지를 주고받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대치국면으로 가면서 언제다시 상봉이 이뤄질지 기약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지난 3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열린 제 10차 유엔인권이사회 고위급 회담에 참석한 신각수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북한이 ‘인권개선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며 ’역사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인도적 참상과 인권상황 악화의 근본원인이 돼 왔다’면서 ‘국제사회는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사회에 필요한 지원을 적시에 제공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신차관의 말대로 이 정부는 경제 상황이 악화된 북한에 ‘필요한 자원을 적시에 제공’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해 1,160억원의 인도적 지원이 있기는 했으나 2000년 이래 가장 적은 금액이다.
더구나 이 가운데 정부차원의 지원금은 436억원에 불과하며 세계보건기구를 통한 말라리아 방역지원, 유니세프를 통한 영유아지원 뿐이다. 쌀이나 비료 지원은 1995년 이래 처음으로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는 민족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었다. 새 한 마리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없다던 그 다리는 그러나 남북적십자 회담 후‘돌아오는 다리’로 불린다.

이산가족들이 한을 풀고 눈을 감게 우선 사람만이라도 다리를 건너게 하자. 신 차관이 유엔에서 한 연설처럼 한국이‘인권, 민주주의, 법치 등의 보편적 가치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평화롭고 번영하며 공정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열쇠라는 확신을 가지고 인권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