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2년 뒤에도 웃을 수 있나
야구, 2년 뒤에도 웃을 수 있나
  • 한관호
  • 승인 2009.03.25 22:17
  • 호수 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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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
WBC 야구 결승전이 끝나자 이구동성으로 나온 반응들이다. 야구엔 별 흥미를 못 느끼던 필자까지 직무유기를 시키며 그것도 사무실에 텔레비전이 없어 친구 사무실까지 한참을 가야하는 수고도 마다지 않게 했으니 세삼 스포츠의 매력을 실감한다. 물론 베이징 올림픽 우승으로 야구 인기가 급상승한 측면도 있으나 아무래도 숙적이라 불리는 일본과의 결승전이라 국민들의 관심이 더 컸던 것 같다.

이런 국민들의 바람을 아는 듯 김인식 감독과 한국 대표팀은 불굴의 투혼을 발휘하며 준우승이란 값진 선물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단순히 준우승이란 결과 보다 이번 한국야구대표팀이 보여준 활약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지 싶다.  
이번 대회는 ‘선민의식을 깬 값진 쾌거’였다. 한국 야구가 베이징올림픽에서 일본과 쿠바를 연파하고 9연승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우승했을 때도 야구 강국들은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았다’는 격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번 대회를 통해 현저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명실상부한 야구 강국으로 자리매김 했다.
우선 선수 구성 측면을 보자. 추신수를 제외하고 박찬호, 이승엽, 김병현을 비롯해 야구 강국 미국과 일본에서 뛰고 있는 한국야구의 대명사격인 이들이 합류하지 못했다. 자연히 베이징 올림픽에 비해 전력이 약화됐다는 평가였다.

이에 비해 4강전에서 맞붙은 베네수엘라만 하더라도 전·현직 메이저리거만 21명, 미국은 선수 전원, 일본도 5명이 메이저리거 였다. 몸값만 봐도 우리는 비교가 안됐다. 한국 대표 팀 28명의 연봉 총액은 76억 7천만원, 이에 반해 일본은 17배가 넘는 1315억원 이다. 베네수엘라 선발투수였던 카를로스 실바의 연봉이 168억원으로 윤석민에 비해 무려 100배 가까이 높을 정도다. 프로선수들의 기량은 몸값으로 평가된다.
그런 객관적인 열세를 딛고 우리 선수들은 집념과 투지를 불사르며 위대한 도전에 나서 ‘위대한 팀’으로 평가 받았다. 세상을 살다보면 종종 ‘촌 놈’ 따위의 편견 어린 말을 듣는다. 이는 사회적 강자가 약자에게 갖는 무의식적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대회를 통해 무엇이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긍심을 얻었다.   
  
스포츠는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이끌어낸다.
이는 김인식 감독의 ‘나라가 없으면 야구도 없다’란 취임 일성에서도 잘 나타난다. 김 감독은 젊은 감독들이 베이징올림픽 우승에 따른 국민들의 기대에 부담을 느껴(?) 감독직을 고사하자 불편함 몸, 적지 않은 나이에도 나라를 위해 나서주었다. 이런 김 감독의 희생이 선수들의 정신력, 단결력을 높였고 고비 고비마다 위기를 넘는 저력이 됐다.

또한 다른 나라와의 경기 보다 특히 일본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핏발이 선 것도 민족주의의 발로라 할 것이다. 일본전에서 이긴 한국선수들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꼽는 심리도 민족주의가 반영된 게 아닐까. 결승전 연장전, 감독의 작전지시를 외면하고 이치로와의 정면대결을 펼친 임창용의 투구도 기실은 이치로 개인뿐만 아니라 일본에게는 이기고 싶은 민족주의적 승부욕이 아닐까 싶다.

일제 강점기를 겪지 않은 세대들도 일본에 대해서는 앙금이 깊다. 지난 주말, 남해에서는 한일 국제라지볼 대회가 열렸다. 그 행사장에 한 청년이 ‘독도를 넘보지 말라’는 피켓 시위를 하려 했다. 물론 손님을 모셔놓고 추태를 보일 수 없다는 주위의 만류로 피켓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빈볼 시비로 한일 선수들이 사뭇 험악한 분위기로 치닫자 김인식 감독은 선수들을 자제 시켰다. 이처럼 편협 된 민족주의가 자칫 대세를 그러 칠 수도 있다는 것을 재인식할 수 있었다. 이제는 잔치는 끝났다. 우리는 2년 후를 기약하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과연 2년 후에도 한국 야구가 온 국민을 열광시키며 삶에 지친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스포츠가 올림픽을 비롯해 각종 세계대회에서 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데 계속 기여 할 수 있을까. 2005년, 제1회 WBC 대회 때 일본 야구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이치로가 ‘앞으로 30년 동안 한국야구가 일본야구에 도전하지 못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했었다. 이치로의 말은 망언이 아니라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고등학교 야구부 53개, 일본 고등학교 야구부 4163개란 숫자가 이를 증거 하지 않을까. 그때도 감독의 용병술과 선수들의 투지에만 의존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