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뒤로 가는 수레바퀴
인권, 뒤로 가는 수레바퀴
  • 한관호
  • 승인 2009.04.01 20:57
  • 호수 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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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위원회 조직을 축소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두고 지난달 27일, 국가인권위원회 출입기자단이 반대 성명을 냈다. 기자들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기사로서 말할 뿐 조직적으로 입장 표명을 하는 일은 드물다.

헌데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인권위란 조직의 역할이 무엇이기에 기자들이 나섰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박찬욱, 류승완 등 영화감독 41명도 인권위 축소에 반대하고 나섰다. 진보적인 사회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사이트에 들어가면 하단에 인권위가 다루는 분야별 업무 유형이 제시돼 있다.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여성, 아동, 청소년, 노인 등이다. 또 검찰, 경찰, 군대, 기업 등 국가기관까지 포함 돼 있다. 전자는 인권 침해를 당해도 구제 받을 능력이 떨어지는 사회적 약자, 후자는 인권침해를 진상규명 하려해도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권력이다. 쉽게 말해 힘도, 돈도, 배경도 없어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찾는 곳이 인권위다.

한 사례를 보자. 나이 오십이 넘은 한 사람이 검찰에 강제 연행됐다. 그는 3박 4일 동안 구타를 비롯해 모질게 당했다. 죄가 없어 조사를 받고 풀려났지만 ‘나가서 발설하면 다른 죄목으로 구속 시키겠다’던 검찰 수사관의 협박에 그는 가족들에게 조차 자신이 당한 수모를 말도 못하고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정신착란증으로 눈앞이 뱅뱅 돌아 신경정신과에도 다녔다.

이런 억울한 사정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국가인권위에 가보라고 했다. 인권위는 1년여에 걸쳐 이 사건을 조사한 후 검찰 수사관 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는 ‘국가인권위를 축소하려는 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말을 못해서 그렇지 어두운 곳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 많지 않겠냐. 어둠 속에서 많이들 울고 있을 것이다’며 인권위 축소는 천부당만부당 하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육성철 사무관이 펴낸 <세상을 향해 어퍼컷>).

이처럼 인권위는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를 구제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더구나 인권위가 만들어질 때 한나라당은 업무, 예산, 조직, 인력의 독립은 물론 특검까지 요구할 수 있는 개혁적인 안을 내놓았었다. 또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등에 따라 인권위 인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던 행정안전부가 입장을 180도 바꿔 조직을 축소하겠다고 나섰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이 정부 하에서 어떻게 인권위가 존재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실 이 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전, 정권인수위는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려했다. 그러나 여론의 반대가 심해 무산됐다. 지난해 1월, 행정안전부가 인권위를 감사했다. 이어 감사원의 회계감사, 5월에는 감사를 위한 예비조사, 이어 6월 2일부터 14일간 실지감사를 벌였다.

그런데 ‘묘하게 감사가 이뤄지던 시점은 촛불정국으로 반MB정서가 급속하게 확산되던 시기’였다. 그 당시 인권위는 촛불집회와 관련한 130여건의 인권침해 진정서를 접수받아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단순한 오비이락이 아니다.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인권위 조직축소 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겨우 208명에 불과한 인권위는 44명을 감원해야 한다.

지난 2002년 출범한 인권위는 첫해 3,022건, 지난해는 6,309건의 진정이 접수됐다. 그리고 올 2월말 현재 1,660건이 조사 중이며 상담이나 민원이 매일 100여건씩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조직을 확대해도 쏟아지는 억울함을 풀어주기 어려운데 도리어 인원을 줄이겠다니 체면치레로 유명무실한 기구로 남으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가운데 국제브랜드 조사 기관인 미국 '안홀트사'가?2008년 세계 50개국 중?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를 33위로 매겼다. 경제 규모 13위인 한국, 그러면서도 브랜드 가치가 중국(28위)보다 낮고 태국(34위)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자 이명박 정부는 2013년까지 국가브랜드를 15위로 끌어올리겠다며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인 ‘국가브랜드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국가브랜드를 높이겠다면서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인 인권위를 축소하는 정부, 언제부턴가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