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곡하는 소리
자연이 곡하는 소리
  • 한관호
  • 승인 2009.04.08 21:40
  • 호수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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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관호 바른지역언론연대 사무총장
아침 출근길이 즐겁다. 사무실까지 20여분 거리, 필자는 걸어서 출퇴근 한다. 가는 길에 제법 큰 공원이 하나 있는데 어떤 사업가가 시민들을 위해 대전시에 기증한 땅이란다. 이 공원을 가로질러 출근하는 길은 늘 경이롭다. 아침 마다 오후 마다 새록새록 달라지는 계절을 만난다.

시민 공원을 아우르고 있는 벚나무가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살갗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미풍에 꽃잎이 날리면 그야말로 환상적 이다. 그 풍경을 즐기고 싶은지 젊은 남녀가 애먼 벚나무를 흔든다. 지난 주말, 하동십리벚꽃이나 진해에 견줄 바는 못 되지만 대전 중구청에서도 벚꽃축제를 열었다. 축제 진행을 나간 한 공무원은 꽃 정취에 취해 술만 잔뜩 마셨다고 한다.

이런 봄 정취를 시샘이라도 하듯이 은행나무도 부지런히 연초록 잎을 피워 올린다. 보도블록 틈새로 강인한 생명력을 뽐내는 민들레가 고개를 내밀고 철쭉도 부랴부랴 망울을 맺어간다. 어느 시인은 ‘뽑고 보니 잡초가 아니라 다 쓸모 있는 식물’이더라고 했다. 이 세상에 흐터루 대할 그 무엇이 있으랴.

헌데 이런 즐거움을 때때로 망치는 이들이 있다. 시민 공원 뒷길 담장은 작은 나무들이 둘러치고 있다. 그 나무들 틈새로 아이스크림, 과자 봉지들이 쑤셔 박혀 있다. 공원 곳곳에는 벤치가 놓여있다. 주로 노인들이 나와 해바라기를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두고 담소를 나눈다. 점심을 마친 회사원들도 즐겨 찾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도 봄 소풍 나온 아이 마냥 싱그럽게 사랑을 나눈다.

헌데 가끔씩 쉬러 가는 그 벤치가 엉망이기 일쑤다. 주변에 허접한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고 신발을 신은 체 벤치에 올라가는 모습도 보인다. 어린이들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모습을 보는 부모들도 좀체 나무라지 않으니 공중의식 부재이다. 또 공원 벤치며 시설물들을 함부로 해 망가지기도 한다.

이는 사물을 내 것이 아닌 것으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내 자가용, 내 책상, 우리 집 마당이라면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거나 발로 차겠는가. 공원의 벤치는 쉽게 망가진다고 한다. 개인 주택에 놓인 벤치와 똑 같은 재질로 만들어도 그렇단다. 사람들이 내 것이 아니라며 험하게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공공재산이 사유물 보다 훨씬 관리비가 많이 드는 이유다. 결과는 결국 내가 내는 세금이 그만큼 많아진다.

지지난해, 유럽 몇 나라를 돌며 연수를 할 때 짬을 내 스위스 융프라우에 올랐다. 한 여름에도 만년설을 볼 수 있고 1,500여 미터에 이르는 정상까지 기차를 타고 오르는 전경이 그만이라 스위스를 찾는 관광객 대부분이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만년설을 구경하고 간식을 먹는 데 쓰레기통에 한글이 보였다.

모두들 신기해하며 다가갔다가 그만 ‘으악’하고 말았다. 그 쓰레기통엔 매직으로 ‘국물을 버리지 마세요’ 라 선명히 적혀 있었다. 스위스 사람인 매점 직원이 어찌 한글을 알랴. 라면 국물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한국 관광객이 오죽 많았으면 그랬으랴. 얼굴이 화끈했다.  

‘하나 밖에 없는 지구, 고객처럼 모시겠습니다’.
어느 기업 홍보물에 나오는 문구다. 그렇다, 지구는 단 하나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구를 너무 하찮게 여기는 게 아닐까. 봄 하면 뽈락, 낚시꾼들이 바다로 내달린다. 그들이 버리는 납으로 만든 봉돌, 쓰레기들로 바다가 병든다. 주말이면 고속도로가 북세통 이다.

그 중에서도 무슨 무슨 산악회라 적인 대형 버스들이 넘쳐난다. 그들이 무심코 분지른 나뭇가지가 신음한다. 강은 또 어떤가. 고기를 굽고 설거지를 하느라 세제를 풀어 쏘가리 숨통을 조인다. 골프장과 기업에서 불법으로 흘려보내는 오폐수가 어민들의 소득원인 바지락을 죽이고 생태계를 옥죈다.      

지난 주말 남해로 가는 길, 진교에서 남해대교로 가는 길은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헌데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꽃 풍경은 어디가고 아름드리 벚나무 수십 그루가 밑 둥이 잘려나갔다. 일차선 국도를 이차선으로 넓히는 공사를 하느라 그랬단다. 또 몇 해 전, 남해군은 읍 시가지 양편으로 늘어선 은행나무 수십 그루를 뽑아냈다.

읍 시장 활성화를 위해 주차공간을 만드느라 사람이 걸어 다녀야 할 인도를 줄이고 은행나무들을 몽땅 뽑아 버렸다. 전국 곳곳에서 강바닥을 파헤치는 불도저 소리가 요란하다. 후손들에게서 빌려온 자연이 곡 하는 소리도 처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