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교육환경개선사업에 대한 충언
광양시 교육환경개선사업에 대한 충언
  • 광양뉴스
  • 승인 2009.04.08 21:43
  • 호수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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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태 새삶교육문화연구원장
“국가의 가장 큰 희망은 젊은이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다.”
이 말은 서양의 문예부흥기인 16세기 네덜란드의 인문철학자 에라스무스가 남긴 것이다. 그의 ‘바보 예찬론(Praise of Folly)’은 널리 읽히는 고전의 하나이다. 광양시는 이 책무를 일찌감치 깨치고서 7년 전 지역의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는 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관내에 명문고를 육성하기 위한 고교 교육 시설 개선에 대한 지원, 성적 우수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원 등을 비롯하여 여러 업적을 쌓았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광양시와 의회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러면서 필자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심정으로 몇 가지 충언을 드리고자 한다.

(1) 시와 의회는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지원조례’를 오늘의 교육환경에 적응하도록 개선하라. 조례 제정 후 근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는데, 이것은 옛날사람의 시간관념에서 나온 생각이다. 교육에 대한 개념도 과거와 달리 엘리트 육성 위주, 명문대 입학, 출세 위주, 경쟁 부추기는 교육에서 탈피해야 한다.

고교 평준화란 제도를 왜 실시했는지 다시 한 번 근본 뜻을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말은 뒤집으면 일부 고교를 명문화할 생각을 접고 모든 고교를 명문화하자는 것, 곧 평등하게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는 경제 논리만이 아니다. 학력에서도 그것을 배격해야 한다. 학교교육은 우등생을 기르기 위한 것만을 목적삼아선 안 된다. 모두가 귀중한 생명, 인격을 갖고 있으며, 그가 태어날 때 지니고 온 잠재능력도 가지가지이다. 국어. 수학. 영어를 못한다고 결코 열등한 아이로 치부하지를 말자.

(2) 장학금 지원에 대하여; 장학금은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지급하는 것이 세상 통례이다. 그런데 오늘과 같은 사교육 천하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란 어떤 부류인가? 예외가 없진 않으나 대부분이 가정의 경제적 형편에 정비례한다.

옛날엔 미꾸라지가 용이 되기도 했으나 오늘은 왕대밭에서만 왕대가 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잠재능력이 있어도 집안이 가난하면 그 능력을 개발하고 향상시키기 어려워 결국 그 능력을 썩혀야 할 운명에 놓여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교육환경개선사업에서 이런 면에도 배려를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이 방향으로 도움을 주도록 조례를 손질함이 좋을 것 같다.

(3) 서울대를 비롯해 소위 명문대 입학생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는 것을 그만 둬라. 소위 SKY대학들에 들어갈 생각을 한 정도의 아이라면 그 가정환경이 경제적으로도 비교적 넉넉한 편이 아닐까. 굳이 학비 지원을 하지 않아도 될 형편일 것이다.

단, 만일 계속해 서울대 입학생에게 장학금을 지불하고 싶거든 조건부로 주도록 하자. 그 조건은 학업을 마친 다음엔 반드시 우리 고장에 와서 일정 기간 봉사하라는 것이다.
(4) 우리 지역 대학 입학생에 대한 장려금 지원;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은 지역화 시대이다. 광양시는 광양시 나름으로 하나의 독립된 공동체로서 세계에 우뚝 서야만 하는 시대이다. 중앙에 의존만 하던 과거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지역 인재는 우리가 육성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우리 지역의 대학, 이를테면 한려대나 이웃 시 소재 대학들에 진학하는 유망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서 안심하고 성실히 학업을 닦아 우리 지역으로 일꾼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함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