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환자의 오른손
그 환자의 오른손
  • 김 용 주 우리치과 원장
  • 승인 2009.04.08 21:47
  • 호수 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 달 전 한 40대 초반의 남성 환자분이 좌측 위, 어금니 안쪽 부위 통증과 함께 잇몸이 붓고 잇솔질 시 피가 자꾸 난다는 이유로 치과를 방문했다.  불편을 호소하는 치아 부위는 기본 잇솔질이 전혀 안 되는 듯 치태(치면세균막)가 두껍게 쌓여있고 첫 번째 어금니 안쪽 잇몸 속 뿌리로는 충치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잇솔질만 잘 되면 별 이상 없었을 상황인데 해당부위에 대한 환자 스스로의 잇솔질이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이다. 일단 스케일러라는 초음파 진동기구를 이용해 잇몸근처의 치태와 치석을 제거하고 일상적 잇솔질 요령을 알려주었다…
 
“자, 이 부분 보이시죠. 빨갛게 염색되어 보이잖아요. 다른 부분에 비해 이 부분이 특히 잇솔질이 잘 안되네요.(사실은 전혀 안 되는 듯 보였다.) 잇몸치료를 통해 잇몸이 개선되었더라도 잇솔질이 안되면 매 마찬가지랍니다. 앞으로 몇 번의 잇몸치료와 치아 뿌리부위 충치치료를 할텐데 환자분께서는 특히 신경써서 잇솔질을 아주 잘하셔야 됩니다.” 미세모 치솔을 이용한 잇몸부위 닦는 요령을 알려드리고 환자를 보냈다.그리고 며칠 후  두 번째 방문날. 환자 잇몸 상태는 전에 비해 좀 나아지긴 했으나 문제는 잇솔질이었다. 첫날 교육을 했건만 잇솔질 요령이 크게 나아진 듯 싶진 않다.  사실 오랜 잇솔질 습관이 한 번의 교육으로 쉽게 달라질 거라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치료에 이어 이번엔 해당 부위 잇몸 마취를 시행한 후 스케일러를 이용, 잇몸 깊은 부위까지 치석을 제거하고 큐렛이라는 손기구를 이용해 뿌리부위에 남아있는 치석이나, 육아조직, 치석이 떨어져나간 뿌리 표면을 매끄럽게 해준다.그런 연후, 이번엔 좀 더 강조해서 잇솔질의 필요성을 환자에게 역설한다.“저 번에 잇솔질 잘하시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다지 개선이 안 된 것 같네요. 이러시면 치료해도 정말 마찬가지거든요.” 하면서 다시금 잇몸병 치료와 후속 관리, 예방에 대한 환자의 지속적 관심, 이를 위한 잇솔질의 중요성 등을 나름 충분히 설명 했다고 보고 다시 환자를 보낸다.

3주 정도 지난 세 번째 방문날.

이번엔 개선된 잇몸상태에서 치아 뿌리부위 충치치료도 하고 잇몸을 낮춰 자가 관리가 쉽도록 잇몸 상태를 만드는 잇몸 수술을 계획했던 날이다. 잇몸 수술을 시행하기 적당한 잇몸상태가 어느 정도는 됐을 꺼라 판단하고 해당 부위를 본 순간! 아니 이게 뭔가 싶다. 잇몸도 안 좋은데 이렇게 잇솔질 조차 신경 안 쓰면 어쩐다고 이러나! 잇몸 수술할 상태도 안되고 다시 초기 잇몸치료부터 되풀이해서 보내야 되는데 사실 짜증도 좀 난다.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니까 왜 안하세요!!” 이번엔 언성을 좀 높여서 타박을 준다. 그 말에 환자 스스로도 좀 무안했던지 자신의 왼손을 들어 해당부위를 닦아보려는 시늉을 해보이며 신경 써서 닦는데 잘 안된다고 하소연 하신다. 그 왼손으로 해당부위를 닦는 몸짓이 상당히 불편한 모습이어서 문득 오른손으로 시선이 갔는데…이럴 수가!! 옷으로 약간 가린 환자의 오른손은 손목부터 심하게 위축되어 무엇을 잡을 수조차 없이 굽어있는 선천적 기형이었다. 사실 유독 다른 부위에 비해 그 부위만 잇솔질이 안 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거다.

한번 의식적으로 해보면 알겠지만 잇솔질하는 손의 같은 쪽 윗부분 어금니 안쪽 부위를 닦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환자에게 잇솔질 안된다고 질책만 했으니… 환자는 또 스스로 내 말에 안 되는 손놀림으로 잇솔질을 하며 얼마나 자책을 했을까 싶다.  마음을 볼 줄 알아야 진정한 의사라는데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환자의 신체적 조건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조차 없이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내 자신이 의사로서 많이 부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