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법, 아십니까.
장차법, 아십니까.
  • 한관호
  • 승인 2009.04.15 22:08
  • 호수 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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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정부 차원, 지자체 별로 장애인의 날 행사를 갖는다. 그런데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열리는 이런 행사는 그야말로 전시행사에 어찌 그리 붕어빵인지 모르겠다.

장애인의 날 행사 풍경은 이렇다.
아침부터 장애인을 실어 나를 버스들이 부산히 마을들을 돈다. 오랜만에 차려 입은, 주로 나들이가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이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실내체육관에 모인다. 이윽고 행사가 시작되면 단상에 앉은 지역에서 방귀깨나 뀌는 내빈들을 줄줄이 소개한다. 이어 장애인 몇 사람에게 공로상, 장애 극복 상 따위가 주어지면 장애인 단체도 감사패 따위로 비장애인(주로 장애인단체에 금전적 도움을 주는) 몇 사람에게 성의를 표한다. 국회의원, 군수, 도의원, 군 의원 등과 지역기관장, 유지들이 나와 ‘존경하는’으로 시작되는 인사말을 늘어놓는다.

허나 높은 분들은 식이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장애인들은 여성 자원봉사들이 날라다 주는 식사를 한다. 무명 가수들이 나와 분위기를 돋우고 흥에 겨운 장애인 몇이 나와 춤도 춘다. 대충 그 선에서 행사가 끝나고 장애인들은 수건 따위 선심성 선물을 들고 행사에 지친 몸을 버스에 싣는다. 단 하루일 망정 사람 대접받은 장애인의 날은 그렇게 저문다.

수백에서 수 천 만원이 드는 이런 행사가 해마다 되풀이 된다. 그런데 일 년에 하루일 망정 장애인의 인권과 관련된 프로그램은 전무한 실정이다. 예를 들면 지자체의 장애인편의시설 실태를 토대로 한 토론회 하나 없다. 장애인의 날은 단지 선거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장, 장애인단체 간부들의 세 과시에 불과하다.

방송이나 신문은 또 어떤가.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지아로 상징되는 온갖 인간승리가 넘쳐난다. 개인의 또는 가족의 도움으로 부단히 노력한 결과 장애를 극복하고 일가견을 이룬 장애인들의 성공 사례기다. 그리고 은근히 장애인들에게 당신도 이들처럼 노력만 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수 있다고 속삭인다. 1,000만 여명에 이르는 장애인 가운데 극소수에 불과한 특수한 사례를 일반화 하고 장애를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 문제로 인식하는 오류를 심어준다. 

그렇다면 장애우들의 현실은 어떤가.
장애인 권익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내다 지금은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김정열씨는 경증 지체장애인이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모 은행에 입사 시험을 봤다. 그는 학점이 매우 좋았고 담당 교수의 추천서까지 받았으며 입사 시험도 잘 치렀던 터라 당연히 합격할 것으로 봤다. 허나 결과는 낙방, 그가 자신의 탈락 연유를 묻자 은행 간부는 ‘장애인’이라서 라고 에둘러 전하더란다. 단지, 빨리 뛰거나 무거운 짐을 드는 일 등에 있어 비장애인보다 떨어질 뿐 다른 무엇도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고 생존권을 ‘차별’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그날 이후 그는 장애인권익운동에 몸을 던졌다.
 
이처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회 저변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차별을 막기 위해 지난 2007년 제정된 것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이다. 그리고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4월 11일부터 장차법에 따른 제1차 의무사항이 시행됐다.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3백 명 이상이 고용된 대형 사업장은 장애인 직원에게 각종 보조기구와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며 신축, 증축하는 공공건물과 아파트 등은 장애인이 다니기 편하게 출입구를 정비하고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복지부가 올 해 초, 전국 16개 시·도 20대 이상 비장애인 270명과 공무원, 의료인, 교사, 언론인, 장애인복지시설 종사자 등 239명, 총 509명을 대상으로 장차법에 대해 조사한 결과 잘 알고 있다가 26%, 전혀 들어본 적이 없거나 잘 모르고 있다가 74%로 나타났다.

특히 충격적인 사실은 20대 이상 장애인 53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장차법을 잘 알고 있다는 18%에 불과했다.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가 60%에 이르렀다. 장애를 이유로 차별 받았을 때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인 장차법을 정작, 장애인인 당사자들은 대부분 모르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게다가 정부는 장차법을 어기는 곳에 시정권고를 내릴 수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인원을 축소해 버렸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장애인 업무를 전담하는 장애인인권증진과를 폐지하려다 장애단체들의 발발로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우울한 장애인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