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변해야 지역이 변한다
공무원이 변해야 지역이 변한다
  • 한관호
  • 승인 2009.04.30 14:44
  • 호수 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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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지역언론연대 사무총장·칼럼니스트

여름이 다가오면 방역차가 마을을 돈다. 그럴라치면 온 동네 꼬맹이들이 모여들어 방역차 꽁무니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 속을 내달린다. 더러 연기속이라 박치기를 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깨지기도 했지만 구름을 내뿜는 방역차는 신기하기만 했다. 방역차 소리가 나면 어른들도 어서 나가보라고 아이들을 재촉했다. 머리와 몸에 이가 있던 시절, 아이들이 방역차가 내뿜는 소독 연기를 쏘이면 이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쩌다 한번 씩 방역차가 마을을 돌았고 당산나무 밑에서 여름을 맞던 어른들은 올 여름엔 모기, 파리 걱정은 없을라나 했다. 나이 지긋한 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추억이다. 그런데 이렇게 방역을 하고 나면 진짜로 모기가 사라질까. 결론은 전혀 아니 올시다 이다. 제아무리 방역차가 마을을 돌아도 밤마다 어김없이 모깃불이 지펴졌다. 모기에 물린 자국에 침을 바르던 기억이 생생하고 파리의 극성도 여전했다. 물론 겨울이면 겨드랑이에서 이도 스물 그렸다. 

웬 뜬금없는 방역 타령인가. 한 공무원에 관한 애기를 하기 위해서다.  남해군 보건소 곽기두 계장은 남해군 방역시스템을 새롭게 바꿀 계획이다. 그의 애기를 들어보자. 차량 방역은 경유에 살충제를 섞어 방역기로 배출하는 것인데 약 성분이 확산되어 넓은 지역을 방역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실제 살충효과는 30% 정도에 불과하다. 더구나 직접 살충이 아니라서 약 성분을 맡은 모기나 파리는 일시적으로 도피 할 뿐이다. 특히 차량 방역은 경유가 불연소 되어 분출 되므로 피부에 닿으면 호흡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이런 방식은 주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적 방역, 기존 방식대로 기계적으로 해오는 관습적 방역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관습을 깰 것인가. 그의 생각은 이렇다. 약 효과가 1-2주일 정도 지속되는 집중분무, 월별로 방역지역과 방역 방식을 달리하는 시스템, 모충과 유충을 없애는 시기별 방역을 할 계획이다. 또 지역별로 위생해충이 서식하는 곳을 파악해 지도로 만들어 상시적으로 감시한다는 구상이다. 첨단화 된 시대에 고작 파리, 모기 애기나 주저리주저리 하는가. 연간 예산이 몇 푼 되지 않는 방역사업이 무어 그리 중요한가. 기실 하고픈 말은 남다른 사고를 가진 ‘6급 공무원 곽기두’를 말하고자 함이다. 

그에 대한 기억은 남해군의 장묘정책과 오버랩 된다. 2001년, 남해군은 ‘장사법’을 그야말로 법대로 시행하겠다고 천명했다. 이 정책의 골자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묘지를 쓸 수 없는 곳을 정해 놓았으나 주민들은 산이나 밭 등 아무 곳에나 묘지를 조성하고 있으므로 이를 법대로 규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침이 정해지자 군민들은 코웃음을 쳤다. 장사에 관해 시시비비하는 것은 불경스런 일로 치부하던 유교문화가 뿌리 깊은 현실이었다. 더구나 그때까지 어떤 권력이나 기관도 유해를 모시는 장사에 관해 단속 운운한 적이 없는 신성불가침이었다.

그러나 남해군은 실제로 불법 묘지 단속에 나섰다.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어떤 유족은 하관을 중지 당하고 공동묘지 또는 남해군 공원묘원으로 옮겨야 했다. 장묘정책 담당이었던 곽기두씨는 멱살잡이 등 온갖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심지어 동료 공무원들로 부터도 수근그림을 받았다. 일과를 마치면 소주 한 병은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악몽에 시달렸다. 그렇게 모진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엔 불가능할 것 같았던 묘지정책이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고려해 보건복지부가 장사법 시행 절차를 개정하게 만들기도 했다.

법을 제정한 정부도, 어떤 자치단체도 손을 대본 적 없는 장사법, 그는 ‘매 년 여의도 크기의 1.5배나 되는 땅이 묘지로 사라지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남해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했단다. 그 결과 군민들은 이 정책을 바람직한 정책으로 평가했으며 남해군은 대한민국 장사 정책의 선진지가 되었다.   날마다 반복되는 업무로 인해 관습에 젖은 일과, 그러나 영혼 있는 한 공무원의 작은 발상, 정책에 대한 확신과 헌신이 조용히 지역의 변화발전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