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사적지 구 도청은 원형보존 되어야 한다
5.18사적지 구 도청은 원형보존 되어야 한다
  • 민 점 기 광양진보연대 상임대표
  • 승인 2009.05.07 15:27
  • 호수 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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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가 뜨겁다. 구 도청 안에서는 5.18사적지 구 도청을 원형대로 지키기 위한 유가족과 부상자 회원들의 농성이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이에 29년 전 일어난 5.18민중항쟁을 되돌아보고 우리가 지키고자하는 구 도청은 오월 정신과 어떻게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자주 민주 통일의 산 역사 5.18
무엇보다 80년 5월은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압제에 학술 언론 종교 할 것 없이 기본적인 인권마저 억눌려 있던 때이다.
노동기본권과 민주인권은 물론 표현과 양심의 자유마저 허용되지 않던 시절에 굴종의 삶을 떨치고 일어나 자주적인 인간의 삶을 외치고 노래했던 역사적 현장이 바로 5.18이다. 

인간의 억압적인 삶은 사회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러한 사회 정치적 상황은 군부독재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알았기에 “전두환 물러가라” “군부독재 끝장내자” 구호가 항쟁기간 내내 외쳐졌다. 이렇듯 5.18항쟁은 인간의 자주성과 함께 자주적인 정부 수립을 위해 군부독재와 그 배후조종자인 미국에 대한 투쟁의 깃발을 드높이 올린 생생한 역사인 것이다.

두 번째로 5.18은 민중민주주의를 구현한 살아있는 역사이다. 당시 전남도청 앞 분수대와 금남로 일대를 가득 메웠던 수 만 민중이 분수대를 중심으로 모여서 민주주의와 조국통일 자주정부 수립을 위한 토론을 몇 날 며칠 이어갔던 것이다.

또한 자체적으로 편성한 시민군을 응원하기 위해 먹을거리 등 물자가 자발적으로 모아져 아낌없이 제공되었다. 시민들이 함께 모인 곳이면 어김없이 주먹밥과 식수가 돌려져 민중이 하나로 어깨동무하는 대동세상이 열린 것이다. 군대와 경찰이 물러난 해방공간 7일 동안 광주시내 일원에서는 단 한 건의 강도 사건도 절도 행각도 벌어지지 않았으니 우리 민중들의 민주주의의식과 수준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세 번째로 5.18은 민족의 염원인 조국통일을 노래하고 실천한 역사적 현장이다. 오월 광주항쟁 당시 “반미자주”구호와 함께 “조국통일”구호가 등장하였고 가장 많이 불러진 노래는 애국가와 선구자 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었다. 우리 민중들은 현명하게도 군부독재의 민중억압과 민주주의 파괴 사태가 조국분단이라는 역사적 질곡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민족의 분열을 획책하고 조국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미국과 군부독재의 기만적인 반통일 식민지 정책을 광주시민들은 예리한 직관력으로 꿰뚫어 본 것이다.
이러한 반미자주와 조국통일 운동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지난 2005년 5.18민중항쟁 제25주년기념행사에선 슬로건으로 “오월에서 통일로”를 채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