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오월
잔인한 오월
  • 한관호
  • 승인 2009.05.28 10:25
  • 호수 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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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먹먹해진 이 가슴을 누군가에게 풀어 놓아야 할 것 같아 너에게 편지를 쓴다. 부디 너희 세대가 끌어가는 세상은 퇴임한지 채 1년여 밖에 안 된 대통령이 타의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는 비극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면서이다. 아비는 충남 보령에 있는 한 펜션에서 언론인 몇 사람과 모임을 가졌었다. 우리는 가끔씩 모여 일상에서 쌓인 것들을 풀어내고 서로 기운을 나누곤 했다.

그날도 거하게 술 한 잔을 나누고는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었다. 헌데, 설핏 잠결에 헨드폰이 울렸고 ‘여보,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어’ 라며 울먹이는 네 어머니 목소리가 청천벽력으로 귀를 때렸다. 황망히 텔레비전을 켜니 악몽이길 바랐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더구나. 머릿속이 하얗게 비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더구나.  

네가 알다시피 아비는 노무현 지지자였다. 그리고 딱 한 번 현직 대통령인 그 분을 직접 만난 일이 있었다. 2004년인가 보다. 총선이 끝난 직 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관련 세미나를 마치고 청와대에 근무하던 후배를 만나러 갔었다. 지금은 남해군수인 그와 애기를 나누며 청와대 경내를 돌고 있는 데 대통령님과 김한길 국회의원이 흔히 텔레비전에서 보는 기와집에서 걸어 나와 야트막한 바위에 앉으시더구나.
우리는 정중히 목례를 올렸고 후배가 ‘남해에서 손님이 와 안내를 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당신이 바위에서 일어나 우리에게로 몸소 걸어와 예의 그 소박한 웃음과 함께 손을 내미시더구나. 평범한 한 시민에게 자신을 움직여 와 ‘청와대 구경 잘 하고 가라’며 따뜻이 손을 내밀던 대통령.

아들아, 그분은 그랬단다. 이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를 버리고자 애썼단다. 국민에게는 허리를 숙이고 손을 내밀면서 제왕적 대통령이기를 한사코 마다했단다. 
이것이 인간 노무현의 모습이라면 정치인 노무현은 어땠을까.
아비 같은 장애인들에겐 그분이야말로 참 고마운 대통령이셨다. 단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적 차별이 심한 사회, 허나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비롯해 장애인복지와 관련된 법 3개가 그분의 임기 동안에 제정됐단다. 그렇듯이 많이 가진 사람, 잘 난 사람 보다 늘 소외된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시던 분이다.

아들아, 특히 천박한 한국의 정치문화를 정립하겠다며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 독점 구조를 혁파하고자 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최대의 업적이란다. 국정원,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이용해 정치를 농단해오던 악습을 버리고 철저히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민주적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했었다.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참여정부는 한층 진보했다. 한 민족이 대립하고 대결하는 구도에서 벗어나고자 임기 내내 남북 관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 9.19 공동성명,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10.4선언 등 큰 성과들을 일궈냈다. 그 결과 북한에 남한기업이 입주하는 등 남북이 공생하는 틀을 만들었으며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통일에의 꿈을 키워주기도 했단다.

아들아, 잘 보거라. 지역주의 타파에 나선 그분의 실천적인 철학도 아주 소중한 것이란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오로지 당선 가능성만을 저울질 할 때 그는 가능성 높은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불가능한 부산 출마를 선택했다. 예상대로 낙선했지만 ‘농부가 밭을 원망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그에게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란 애칭을 헌사 했다.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분, 와서는 ‘와, 좋다’며 자전거에 손녀를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하고 초등학교 여학생이 사탕 한 알을 건네자 스스럼없이 까서 오물거리며 먹던 모습, 허름한 잠바를 입고 마을 구멍가게에 앉아 담배를 태우던 더할 수 없이 서민적이던 그분의 면모를 보고 너희들은 ‘노간자’라 이름 붙였지.  

아들아, 하지만 끝까지 서민의 대통령이고자 했던 그 분은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리고 지역과 계층과 연령을 넘어 온 국민이 애도하는 죽임인지라 그 죽임에 대한 진실은 역사가 밝혀 낼 것이라 믿는다.
다만 ‘정말 부패한 사람들은 부패와 함께 살아갈 수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잘못된 일을 했다는 사실과 타협할 수 없는 개혁운동가였다" 는 더 타임스의 기사를 덧붙이며 이제 나도 봉하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