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732조를 삭제하라
상법 732조를 삭제하라
  • 한관호
  • 승인 2009.06.18 09:44
  • 호수 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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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남해읍에서 옷 가게를 한다. 서울에 있는 남대문과 동대문에서 옷을 사와 파는 데 주로 30-40대 여성들이 고객이다. 아내의 고객 중에 보험회사에 다니는 분이 보험을 하나 들어달라고 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는 게 세상 이치라며 아내는 필자의 보험을 들었다. 

그런데 장애인이라 보험가입이 안 된다는 통보가 왔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서울에 있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문의했더니 국기인권위에서 시정 조치를 내려도 보험사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지체장애 4급에 불과한 필자인데도 보험 가입이 안 되니 비교적 심한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은 어떤 차별을 받고 있을까. 

#가입 거부 사례
ㅅ씨의 오빠는 지적장애 3급이다. 어느 날 집으로 장애인도 우체국 보험(어깨동무)에 가입할 수 있다는 팜플렛이 왔다. 오빠의 미래를 걱정하던 ㅅ씨는 오빠 앞으로 암보험과 상해보험을 가입시켰다.
그런데 며칠 뒤 ‘정신지체장애인은 사고율이 높아서 보험을 들면 윗선에서 짜른다’고 하면서 가입을 취소한다는  연락이 왔다. 주유소 주유원으로 일하고 있고 장애인도 보험가입이 가능하다는 팜플렛까지 배포해놓고 이제 와서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지만 돌아온 건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

#보상금 제한 사례
딸이 태어난 지 18개월이 지날 무렵 아는 사람의 권유로 ‘어린이사랑보험’에 가입했다. 여느 아이처럼 건강한 줄 알았던 딸은 불행히도 정신지체 1급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다른 이상은 없이 벌써 아홉 살이 되었다.
특수교육을 시킬 요량으로 보험회사에 ‘보험내용 중에 특수교육비가 있으니 지급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정신지체장애는 선청성이라 보상이 안 된다고 했다. 후천성을 괜찮고 선천성은 안 된다니 이야말로 차별의 차별이 아니냐고 따졌지만 별 수 없었다.

이런 사례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국이 지난 10년간 상담 받은 86건 가운데 일부이다. 이런 일이 잦자 연구소 조병천씨가 보험가입을 신청했다. 허나 그 역시 거부당했다. 그는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보험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보험가입을 거부 당하 거나 보상금을 차별지급 받고 있다.

보험사들이 장애인 보험가입을 거부하는 것은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사고가 날 확률이 많을 것이란 편견 때문이다. 그러나 몸 또는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사고가 많다는 통계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재단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심신상실 또는 심신박약 장애인은 장애인전용보험이나 여행자보험에서 조차 거절당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이다.
보상금 차별은 주로 지적장애인들의 경우가 많다. 이는 장애를 무조건 선천적인 것으로 파악해 일방적으로 가입을 해지하거나 보상을 차별하고 있다. 또 장애 자체를 기왕증으로 보고 장애의 사고 기여율을 높게 책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상법 제 732조에 있다. 이 법은 15세 미민자,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어 장애인들의 보험가입을 가로막는 독소조항이다. 한 예를 보자. 장애인들이 일하고 있던 한 사업장에서 불이 나 여러 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러나 이들은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회사가 단체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던지라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인권위는 상법 732조를 삭제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더구나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2008년 4월부터 시행중이다. 나아가 이 법 17조는 ‘보험가입 등 각종 금융상품과 서비스 제공에 있어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2006년 12월, 유엔총회에서는 192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장애인권리협약‘ 중 제25조에 ’장애인의 보험가입과 관련해 생명보험의 제공에 있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 한다‘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조항이 상법 제 732조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며 비준을 유보하고 있다.
인간의 평등권, 인권을 제약하는 이 같은 일은 하루빨리 시정돼야 한다. 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악법, 상법 제 732조를 하루빨리 삭제하고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