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유력인사의 ‘솔선수범’
지역 유력인사의 ‘솔선수범’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09:36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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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호 - 광주일보 부국장
서민은 괴롭다. 언제 삶이 펴질까 싶지만, 서민들이 살기는 여전히 팍팍하다. 나아지기는 커녕 올 한해는 더 어려운 것 같다. 내수부진이 심각한 지경에 다다라 서민들의 겨울나기가 혹독하다.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극빈세대가 주린 배를 움켜지고 사선을 넘고 있다. 좀 낫게 산다는 서민 역시 자녀 학자금, 부모병원비 등 돈 쓸 일이 많은데 돈은 없고 막막하기는 매일반이다.

살기가 더 나아져야 하는데도 갈수록 힘드니 웬일일까.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생활이 나아진 것은 없고 고통만 깊어진다. 결코 맘이 빈곤해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상대적 빈곤도 아니다. 진짜 못 살겠다는 것이다. 절대 빈곤층이 늘어가고 있다.
하는 꼴이란 신물 난다. 있는 자들이 더 지갑을 열지 않고 정치권은 허구한 날 쌈질만 하고 있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있는 자, 가진 자들이 반성하고 관심과 배려를 해야 하는데, 이 나라에선 정녕 기대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가 말이다.

지역에서도 거의 흡사하다. 이른바 말께나 하는 자들이 거드름 피우고 으스대기만 하지, 지역을 위해, 지역 주민을 위해 낮은 자리로 임하는 자세는 찾아볼 수 없다. 거리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내걸린 요즘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은 고사하고 폭탄주에 흥청망청 망년회만 쫓아다니는 그런 쓸개 빠진 친구들이 지역을 좌지우지 한다면 되겠는가. 지역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은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반성과 회한으로 불우이웃에 대한 온정을 베푸는 것이 도리다.

로마는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을 벌였다. 이 때 최고 지도자인 콘술(집정관)의 전사자 수만 해도 13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로 인해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계속되는 전투에 귀족들이 자진해서 전장에 나서 많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로마는 제정(帝政) 이후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고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면서 발전의 역동성이 급속히 쇠퇴했다.
사회고위층이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다해 총체적 국난을 극복한 사례는 비단 로마제국뿐만 아니다. 근현대사에서도 많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다. 또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기도 했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했다.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도덕의식은 계층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특히 전쟁과 같은 총체적 국난을 맞이하여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가도 그렇지만,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역의 유력인사들이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주변을 돌볼 여유와 관용을 베푸는 것이 지역을 윤택하게 하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솔선수범은 자녀교육들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지역사회에서도 절실한 덕목이다.
 

입력 : 2004년 12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