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간+철학’이 빚어낸 예술 집합체
‘자연+인간+철학’이 빚어낸 예술 집합체
  • 이성훈
  • 승인 2010.11.22 09:32
  • 호수 3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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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온천 휴양지 로그너-바트블루마우

건물 하면 으레 ‘직선’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 휴양지 건물을 보더라도 기본적으로 직사각형 건물에 곡선이 조금씩 첨가된 형태가 일반적이다. 만일 직선이 단 하나도 없는 건물이 있다면? 오스트리아 빈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바트 블루마우가 있다.

이곳에는 직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동화나라 같은 건물이 있는데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온천단지인 ‘로그너-바트 블루마우’가 그것이다. 온천 리조트인 로그너-바트 블루마우는 지난 1993년 건축을 시작해 97년 완공했다. 운영한 지 올해로 13년째를 맞이한 온천 리조트는 이제 웰빙 휴양지로 유명세를 톡톡히 누리고 있으며 이 작은 마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동화 같은 리조트 건물에 관광객들은 매료되면서 “온천욕도 즐기고 휴양도 하는 안식처”로 인식하고 있다. 로그너-바트 블루마우가 지역 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리조트로 인해 농촌 마을이 어떻게 경쟁력을 키웠는지 살펴보면 또 다른 각도로 지역 마케팅 전략을 살펴볼 수 있다.


쓰레기 매립장으로 검토 됐던 바트 블루마우

바트 블루마우라는 마을은 로그너-바트 블루마우가 생기기 전 주민들만 살았지 경제적 활동이 부실했던 시골의 한적한 마을이었다. 이곳은 한 굴지의 정유회사가 석유개발을 위해 굴착하던 중 온천수를 발견하게 됐다.

하지만 이 회사는 온천수의 가치를 모른 채 도리어 이곳을 콘크리트로 막았다. 이후 호텔업 사업가인 R. 로그너가 개발 사업을 제안해 재발굴한 결과, 100℃의 분출성 온천을 발견하게 됐다. 고품질의 온천수를 발견한 로그너는 세계적인 건축가인 훈데르트 바서에게 디자인을 의뢰하며 이 마을은 180도 바뀌게 된다.

“자연에 직선은 없다”

건축가 훈데르트 바서(1928~2000)는 오스트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이며 환경운동가, 평화주의자다.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바서의 철학. 그는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기인한 모티브로 예술 활동을 펼쳤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형식으로 현대 건축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 바서는 ‘신은 직선을 모른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소신을 가지고 자연보호, 반핵운동, 유럽연합 가입 반대 운동 등을 펼치기도 했다.

바서의 이런 철학에 따라 로그너-바트 블루마우는 독특한 디자인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설계됐다.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이곳 온천은 직선을 찾아볼 수 없다. 건물 전경은 물결치듯 움직이는 건물의 선과 하얀 바탕에 노랑과 핑크 등의 색깔이 섞여 마치 동화 속의 성에 와있는 듯 한 느낌을 준다. 건물 지붕 역시 콘크리트가 아닌 잔디밭이다. 2400여개의 창문은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고 복도 역시 직선이 아닌 울퉁불퉁한 모형으로 자연스러움을 담았다. 이 온천은 훈데르트 바서의 건축관, 세계관, 인생관을 그대로 반영했다.

로그너-바트 블루마우의 전체 면적은 8500㎡이며 수영장은 2700㎡이다. 리조트 객실은 총 312개가 있는데 700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리조트 직원은 300명 가량으로 대부분 바트 블루마우 주민들을 고용하고 있다. 일반 건물들과 같이 건물과 객실, 온천수는 지역 규정에 맞게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 


냉난방비가 따로 필요 없는 자원 순환시스템

로그너-바트블루마우의 객실은 모두 312개다. 객실은 여러 개의 건물에 나뉘어 있는데 모든 건물의 지붕은 흙으로 두껍게 덮여 있고 흙에는 나무와 풀이 자라 마치 여러 개의 동산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인위적으로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자연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독특하다. 지붕 역시 평평한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흙으로 덮고 풀과 나무를 심어 놓았다.

친환경적으로 짓다 보니 에너지 절약에도 한몫하고 있다. 로그너-바트 블루마우는 별도의 전기세가 들지 않는다. 모든 객실과 식당, 사무실은 지하 동굴에 있는 셈이어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 춥지 않다. 겨울에는 온천수로 난방을 하고, 온수를 해결한다. 이곳에서 나오는 온천수의 온도는 약 110°c이며 온수로 사용할 때는 40°c의 물이 나온다. 다 쓰고 남은 온천수는 그대로 버리지 않고 순환 시켜 재사용한다.

건물도 친환경인데다 에너지 역시 친환경인 셈이다. 이곳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에게는 또하나의 혜택이자 보람이 주어진다. 숙박료 중 0.6유로(약 940원)는 예를 들어, 온천리조트에 숙박한 요금중 0.6유로는 WWF(자연보존기금)에 기부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하루 숙박을 하게 되면 1년 기준으로 아마존 우림을 최소 축구장만한 규모를 보호할 수 있는 기금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브라질 열대우림 지역에 50만㎢(한반도의 2.5배) 보호구간을 구축하고 영구보전하기 위한 WWF의 노력에, 로그너-바트블루마우와 함께 숙박하는 방문객도 동참하는 셈이다.


지역주민과 함께 경쟁력 갖춘다

로그너-바트블루마우를 짓기 전 사업가 로그너는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대규모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인근 주민의 환경권과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해 주민들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오스트리아의 법 때문이었다.

당연히 주민들 사이에서는 찬반 논쟁이 있었다. 로그너는 주민들을 설득하고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설명하며 주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했다. 이런 노력 끝에 주민들로부터 동의를 얻고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현재 로그너-바트블루마우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약 330명 가량 된다. 대부분 인근 주민들이다. 또 인근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기와 채소, 달걀 등을 제공 받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곧 지역경제 활성화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로그너-바트블루마우가 생기고 나서 주변에 호텔 등 숙박지가 들어섰다.

이 마을 경제 전체가 ‘로그너-바트블루마우’라는 온천장을 중시으로 형성된 것이다. 과거 쓰레기 매립장 예정지 정도로 인식되던 바트 블루마우는 이제 온천 관광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한 사업가의 미래를 내다 보는 안목, 천재 건축가의 친환경을 고집으로 한 설계, 주민들과 함께 지역 경제를 살리는 공동체적인 삶이 조그마한 농촌 마을을 부농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