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르네상스의 중심, 광양 역사문화전시관
광양 르네상스의 중심, 광양 역사문화전시관
  • 광양뉴스
  • 승인 2010.12.06 09:42
  • 호수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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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문화컨텐츠 스토리텔링 경연대회 본선 진출작품 릴레이 게재 <3>

나종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행복한 도시 광양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광양의 봄은 섬진강 매화꽃이 열어줍니다.
홍쌍리 여사와 매화마을 주민들의 땀과 정성이 피어낸 매화 향기가 우리들의 가슴에 봄을 먼저 전해 줍니다. 백운산 4대 계곡의 맑은 물소리에 여름이 오고 윤동주 유고 망덕포구의 전어축제와 서천변 숯불구이 축제에 가을이 익어갑니다.

따뜻한 인정과 고로쇠 수액으로 광양의 겨울은 깊어갑니다.
아름다운 도시 광양에 우리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건물이 광양읍에 있습니다. 국가등록 근대문화유산 444호, 광양시 역사문화전시관이 만들어지고 광양문화원사가 있는 곳. 이 건물은 1913년 광양읍성의 육방 작청이 있었고 1942년 구)광양군청사로 건물이 준공된 곳입니다.

광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1070년동안 행정의 중심지 였던 유서깊은 터전입니다. 지금의 남문슈퍼 자리가 광양읍성의 남문입니다 동문은 농협시지부앞, 서문은 구)광양경찰서 관사 부근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지난 2009년 10월 12일 문화재청 근대 문화재과에서 구)광양군청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하면서 그 가치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구)광양군청이 있던 자리는 1913년 광양읍성의 육방작청이 있었던 곳으로서 작청이 훼철된 후 1942년 구)광양군청이 준공되었음]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의 전형적인 관공서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며 지난 67년간 광양읍을 중심으로한 역사성을 보존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건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장소적 가치가 높이 평가됨] 이라고 높은 관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민족은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켜오면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낸 위대한 민족으로서 분단된 현실속에서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발전하는 기적을 창조해 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기에 우리들에게 더 큰 교훈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픈 우리 역사를 감추고 숨길것만 아니라 오히려 떳떳히 공개하고 지켜서 그 교훈을 미래의 동력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구)광양군청사 앞에는 화신광장이라는 유명한 광장이 있습니다. 1945년 해방, 1948년 여순사건, 1950년 6.25사변을 거치면서 우리 현대사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내일을 열어가는 지혜를 얻습니다.

우리나라는 5000년의 역사동안 980회의 외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꿋꿋히 나라를 지켜 지금의 국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숨기고 감출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세계에 맞서 우리의 모습을 떳떳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역사와 전통이 숨쉬는 문화의 거리

광양역사 문화 전시관에서 광양의 어제, 오늘, 내일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세계화된 오늘 일본인들이 중국인들이 세계인들이 찾아오고 우리의 저력을 그들이 배워가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의재창조 현장이 되게 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전 구)광양군청사앞 합동정류장에는 광양5일장이 되면 재만형이 멋지게 교통정리를 했습니다. 약간 어눌하지만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호루라기를 불며 자청해서 교통정리를 하였습니다.  복잡한 장날 줄을 서라고 호통치던 재만이 형의 호루라기 소리는 항상 우리 귓가에 살아있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재만이 형은 그날 1000원이 생기면 그 이상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안쓰러워 1000원 짜리를 쥐어드리면 절대 돈있다고 받지 않았던 분입니다. 비록 모자란 듯 초라하게 살았지만 그만의 생활철학과 소신을 가졌던 재만이 형이 그립습니다.

정채봉 시인이 자랑했던 우리읍내
사랑이 숨쉬는 문화의 거리
여러분이 앉아 계시는 그 자리에서 15분거리 광양역사 문화 전시관에 오셔서 따뜻한 차 한잔 하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