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은 건축물 하나, 열 개 시설 안 부럽다
잘 지은 건축물 하나, 열 개 시설 안 부럽다
  • 이성훈
  • 승인 2010.12.13 09:27
  • 호수 39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위스 루체른 KKL 컨벤션 센터…예술ㆍ문화 수준 높여


호수의 나라 스위스. 알프스의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스위스는 누구나 한 번은 가고 싶은 나라로 인식되어 지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는 흔히 맥가이버 칼로 불리는 빅토리녹스사에서 제작한 다용도 칼, 정밀하기로 유명한 스위스 시계는 국격을 높이고 있다.

스위스 국민 역시 정직하고 근면한 국민성, 신뢰를 바탕으로 안정된 사회를 이룬 역사를 갖춰 ‘자연+인간+산업’이 적절히 조화돼 지상의 천국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스위스 국민들의 자연 사랑은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다. 이렇다 할 자원이 없는 스위스는 알프스 산맥을 이용한 보석 같은 자연 환경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재산이다.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 세계적 문화도시 탄생시켜 
 
스위스의 문화도시 루체른(Luzern)은 문화관광 기반시설 확충과 이를 통한 다양한 이벤트 개최 등으로 세계적 문화도시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다. 루체른시가 다양한 문화도시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KKLㆍKuturund-Kongresszentrum Luzern)가 있기에 가능했다.

루체른시의 인구는 6만 명. 그런데 시 한 복판에 3천억 원이 투입된 문화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루체른이 연중 음악제가 열리는 도시가 된 것은 1998년 KKL이 문을 열고 난 이후다.


유럽 최고의 문화전당을 짓겠다는 루체른 시민들의 열망이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을 만나 KKL이 탄생했다. 5년 후 장 누벨은 루체른 중앙역에 한 면을 기댄 유리와 철골의 검은색 하이테크 6층 건물을 선보였다. 기존 음악당에 새로운 콘서트홀, 컨벤션센터를 덧붙인 아름다운 문화전당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KKL 건설 이후 지역 경제 효과도 덩달아 상승했다. 지난 2003년에는 늘어난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인근에 큰 호텔이 들어섰으며, 2003년 전문기관 감정 결과 건설 이전보다 루체른시의 관광수입이 6천만 스위스 프랑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자연과 조화, 완벽한 음향 장치

KKL의 주제는 ‘물’이다. KKL은 호수가 천장에 반사되는 건물이라는 뜻도 있지만 ‘운반’과 ‘수송’의 의미도 있다. KKL 건물 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루체른 호수가 있는데 건물 앞 루체른 호수를 건물 내부까지 끌어와 설계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원래는 루체른 호수 가운데 KKL을 세우려 했지만 법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하자 건물 아래 물을 끌어들이는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된 것이다. KKL 건물의 천장은 길이 25m로 상하 58㎝까지 움직이며 시속 200㎞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루체른시는 호수가 있어 강한 바람이 자주 분다. 건물 앞 호수의 출렁이는 물결은 그대로 천장에 반사되고, 건물 2~3층의 유리창을 통해 호수를 볼 수 있어 자연 속에서 문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을 제공한다. 천장에는 겨울에 눈이 녹아 고드름이 얼기도 하는데 물이 순환하면서 온도를 높이는 난방 시스템을 설치, 이를 방지했다. 

KKL내 콘서트홀의 규모는 가로 32m, 세로 64m, 높이 32m의 웅장한 규모로 전체 모양이 신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신발통’이라고도 불린다. 1층은 호수면 보다 낮은 구조이며 처음 설계는 2500석을 목표로 했지만 객석 수가 늘어나면 음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에 1840석으로 객석수를 줄였다.

KKL에서 홍보와 프로모션을 담당하고 있는 크리스챤 슈스(Christian Suss) 씨는 “연주자 및 청중을 위한 콘서트홀의 음향시설과 첨단 무대 시설을 갖춘 것이 KKL의 가장 큰 특징이다”고 강조했다. 음악회뿐만 아니라 영화제 시상식과 콩그레스 등 다른 용도로도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슈스 씨는 “내부 벽 방음시스템은 음각과 양각으로 이뤄져 오케스트라 규모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도록 조정이 가능하다”면서 “객석 좌석 밑에는 공기조절시스템이 설치돼 이용객들이 여름과 겨울에 따라 다른 옷을 입고와도 옷이 바스락거려 소음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천장에 설치된 시설물 역시 오케스트라 규모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가능해 연주자들이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을 직접 들으면서 연주할 수 있다. 루체른홀과 컨벤션센터, 콘서트홀 모두 개방해 하나의 극장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중음악 공연이나 세미나, 클럽 모임 등 어떤 용도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중앙의 객석이 튀어 올라 패션쇼의 워킹라인이 되기도 한다.

일 년 내내 세계적 예술 공연 풍성

KKL에서는 매년 400개(음악행사 250개, 콩그레스 150개)의 이벤트가 열리고 50만 명이 관람한다. 1년 수입은 2400만 스위스 프랑이고, 그 중 절반이 캐터링서비스(웨딩이벤트 개최시 음식서비스, 레스토랑, 스넥바 등 직영매장 수입, T셔츠 등 기념품 판매)를 통해 얻고 있다. 1년 중 10만 스위스 프랑 흑자를 올리고 있는데 수입은 전부 시설 관리 및 투자비용에지출하고 있다. 또한 시청과 주정부로부터 4백만 스위스 프랑을 지원받고 있다. 특히 시카고 심포니, 뉴욕 필하모니는 정기적으로 방문해 연주회를 갖기도 한다.

유럽 각국 주요 방송사가 주최하는 각종 시상식도 열린다. 이밖에 바젤 등 인근 도시와 프랑스 등지에서 각종 회의를 하기 위해 KKL을 찾기도 한다. KKL은 공연 외에도 수려한 건물 경관 및 루체른 호수와 적절히 어울려진 환경으로 건물 자체로도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KKL 주변에는 호수를 이용한 유원지가 발달되어 있어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항상 드나들고 있다. 

잘 지어진 건축물 하나가 관광객 유치 효과는 물론 문화, 예술에 대한 도시민들의 안목을 한층 발전시켜 놓은 셈이고, 도시 전체의 운명도 바꿔놓은 것이다. 슈스 씨는 “KKL을 통한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건물이 지어지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면서 “특히 루체른 시민 또한 문화시민으로 탈바꿈시켰다”고 강조했다.

KKL의 사례는 시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로를 넓히고 건물을 보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술과 문화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루체른시는 특히 도시 이미지 전략을 카펠교와 KKL에 집중하고 있는데 백화점처럼 늘어놓은 것은 결코 좋은 마케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공모를 통해 세계적인 건축가와 음향 컨설턴트를 끌어들이고, 매력적인 문화공간을 통해 다시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불러 모으는 전략은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도시들에서 한번쯤 연구해 볼만한 전략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