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업 시민으로서 사회에 공헌하는 야하타제철소
좋은 기업 시민으로서 사회에 공헌하는 야하타제철소
  • 박주식
  • 승인 2011.12.05 10:14
  • 호수 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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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의 근대 제철소… 환경우선 ‘선도’

일반적으로 기업의 사회참여란 기업이 전통적으로 수행해온 본질적인 경제활동을 넘어서 기업과 시민사회의 관계 속에서 수행하는 활동으로서 사회에 대한 기업윤리 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되어 있다. 기업의 사회참여활동은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 대한 기업의 단기적 반응의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이 부각되면서 보다 적극적인 의무로서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의 사회참여활동은 기업이나 기업과 관계있는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안에서 기업의 사회적의 의무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기업의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회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의무로 인식되고 있는 시점에서 광양신문은 국내 대기업의 사회참여활동을 비교함으로써 지역기업인 광양제철소와 광양시민사회의 올바른 관계형성을 도모코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포스코광양제철소의 지역협력사업
2. 지역사례 탐방 ① GS칼텍스의 지역협력사업
3. 지역사례 탐방 ② SK에너지의 지역협력사업
4. 해외사례 탐방 ① 일본 야하타제철소의 지역 협력사업
                            ② 스페이스 월드와 환경박물관
5. 지역과 기업의 올바른 관계형성 방안

▲ 신일본제철소 전경

야하타제철소 주변지역 주민들이 바라보는 기업에 대한 시각은 뭔가를 요구하기에 앞서 지역과 기업은 이미 하나이며, 기업이 지역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반응이다.
우리지역보다 70~80년을 앞서 기업 활동이 시작됐고, 그동안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제기와 해결, 기업이 떠나면서 지역의 공황을 체험한 결과다.

야하타제철소는 일본 규수 최북단에 위치한 후쿠오카 현의 기타큐슈 시에 위치해있다. 기타큐슈 시는 1963년 고쿠라 시, 모지 시, 야하타 시, 와카마쓰 시, 도바타 시가 통합해 탄생한 도시다.
기타큐슈 시는 배후의 내륙 지역인 지쿠호 지방에서 산출된 석탄과 함께 발전해 왔다. 이 석탄이 와카마쓰 지구에서 생산되어 수출되었고, 메이지 시대 말에는 야하타 지구에 일본 최초의 제철소가 건설됐는데, 여기에서 지쿠호 지방에서 산출된 석탄을 원료들 중 하나로써 널리 사용했다. 그 후에 야하타와 도바타가 제철을 중심으로 한 중공업 도시로서 발전했고, 4대 공업 지대의 하나인 기타큐슈 공업지대를 형성하게 됐다.

야하타제철소는 기타큐슈시의 토바타구와 야하타히가시구에 걸쳐 있는 제철소로 일본 최초의 근대적 제철소다. 부국강병 식산흥업을 슬로건으로 내건 메이지 정부는 이를 위해 근대적 제철소 건설을 추진했다. 1891년 건설을 개시한 야하타 제철소는 청나라로부터 받은 전쟁배상금을 건설비로 충당했다고 한다. 도카이만에 접해있어 해운수송이 가능하면서도 적군으로부터의 방어가 용이하고, 풍부한 매장량의 지쿠호 탄전에 인접한 야하타는 제철소 건설의 최적지였다고 한다.

1901년 히가시다 제1고로의 점화를 시작했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선철 추출에 실패해 결국 1902년에 조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의 발발로 철강 수요가 증가하면서 고로를 개량해 선철 생산에 성공하면서 조업을 재개했고, 세계1차 대전을 거치면서 꾸준히 설비를 증강해 고로단지를 이루게 됐다.

이후 세계대공황의 불황으로 제철산업 합리화가 추진돼 관영이었던 야하타제철소는 1934년 와니시, 가마이시 제철소 등과 합쳐져 관민합동기업인 일본제철로 출범하게 된다. 세계 제2차 대전의 발발로 철강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일본제철의 설비 확장은 계속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제철은 연합군 총사령부에 의해 야하타 제철과 후지 제철로 분리됐지만 1970년 재합병한다. 이때 이름을 지금의 신일본제철로 바꿨다.

전국 각지에 제철소ㆍ제조소를 가지고 있는 신일본 제철은 지역과의 공생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지금도 신일본 제철 문화재단에 의한 음악 지원 활동, 스포츠 팀의 운영에 의한 지역의 일체감 양성, 지역 이벤트 참가ㆍ협찬, 복리후생 시설의 개방 등을 통해 ‘지역과의 공생’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 1910년도 야하타제철소 모습

신일본 제철이 야하타제철소 주변 지역민을 위해 펼치고 있는 공헌 활동 중 가장 우선은 지역의 축제와 각종 대회를 주최ㆍ참가해 지역과 함께하는 일이다. 또 지역에 공헌하는 제철소 만들기 일환으로 ‘신일 철 야와타 하트풀 스틸의 회’라는 자원봉사그룹을 결성, 시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자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밖에도 ‘토우다 프로젝트’를 통해 일본 고래의 제철법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에 공헌한 개인ㆍ단체를 표창하는 ‘지역사회 공헌상’을 제정해 ‘좋은 기업 시민으로서 사회에 공헌하는 제철소’ 만들기에 노력하고 있다.

잿빛도시에서 녹색도시로

야하타제철소의 역사는 일본의 환경오염문제 해결 역사와도 그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야하타제철소가 접해있는 도카이만은 이미 최악의 수질오염을 연출했으며, 맑은 하늘조차 볼 수가 없었다. 철강과 화학 산업 등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 무분별한 오염물질 배출이 지속됐지만 아직은 환경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난개발로 인해 광화학 스모그가 매일 발생했고, 도카이 만은 ‘죽음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오염됐고, 당시 야하타 등 주변 지역의 학교에서 피해가 극심했으며 아이와 노인을 중심으로 기관지 천식 환자도 급증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나선 이들은 도바타 지역의 주부들이었다.
병들어 가는 가족들을 뒷바라지하는 안타까움과 날아드는 먼지로 쉴 새 없는 청소에 지친 엄마들은 ‘공해로부터 가족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이들은 먼지조사부터 시작해 각종환경오염 실태를 촬영한 ‘푸른 하늘을 보고 싶어’를 완성했다. 이를 계기로 주부들은 공해피해에 대한 대책마련을 정부에 요구했고 결국 공해관련법이 제정되면서 기업의 책임을 엄격히 묻게 되기에 이르렀다.

▲ 야하타제철소 히가시다 제1고로사적.
기타큐슈 시는 1963년부터 공해행정조직을 정비하고 공해대책심의회를 설치하는 등 체제정비에 나서 1967년에는 시와 기업이 처음으로 공해방지협정을 체결했다. 1971년에는 공해대책국을 설치하고 중앙정부의 법률보다 엄격한 ‘기타큐슈시 공해방지 조례’등을 제정했으며, ‘그린 기타큐슈 플랜’등을 통해 대규모 도시 녹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기타큐슈 시의 대기 수질오염은 눈에 띄게 달라져 1985년에는 OECD 환경백서에 ‘잿빛도시에서 녹색도시로 변모한 도시’로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경제우선에서 환경우선으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 기타큐슈 시는 도시발전과 환경보전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세계적인 환경모델도시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진 주민들과 기타큐슈 시의 노력뿐만 아니라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기업들 참여도 큰 몫을 차지했으며, 그 선두엔 기타큐슈 공업 지대의 근간인 야와타제철소가 있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