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광양사람 다 되어 버렸구나!
너, 광양사람 다 되어 버렸구나!
  • 광양신문
  • 승인 2006.09.29 17:55
  • 호수 18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 기 우 / 포스코 사원(공사팀)
“어이 친구야! 광양쪽으로 여행을 한번 갈려 하는데 볼거리가 뭐고 언제쯤이 가장 좋아?”“좋은데 아주 많지 뭐. 그리고 아무때나 다 좋아” 언젠가 서울에 사는 친구와 주고받는 전화 내용이다.이른 봄 매화꽃 축제 이야기며 곁들여 이웃마을 산수유 축제, 그리고 고로쇠 축제를 열심히 설명하며 봄 이야기가 끝이 나고 옥룡계곡, 봉강계곡, 어치계곡 이야기로 여름을 마무리 한다.전어축제, 숯불구이 축제, 광양하면 빼 놓을 수 없는 밤 이야기, 그리고 백운산, 지리산 이야기, 거기다가 싱싱한 횟감 이야기며 원래는 포항의 특산물이지만 지금은 광양에서도 흔히 맛볼 수 있는 과메기 이야기까지로 가을과 겨울을 내리 설명을 쫘~악 하고 나면 10분이 훌쩍 넘어 버린다.“너 광양사람 다 되어 버렸구나”설명을 듣고 난후 친구가 한 말이다. 언제부턴가 광양에 대해 물으면 설명을 해야 했고 횟수가 거듭되면서 이제는 어느새 머리 속에 설명 할 줄거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 같다.행여 한가지라도 빼 먹지는 않았나 싶어 다시 뒤집어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입으로는 말을 하고 머리 속에서는 다음 이야기 줄거리를 찾느라고부단하게 움직이는가 하면, 기왕이면 실감나게 이야기 하려고 스스로 애를 쓰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벌써 포항에서 5년여 살다가 이곳 광양에 둥지를 튼 지가 20여년이 다 되었다.처음엔 많이 서먹서먹하고 언행이며 행동에 많은 신경을 썼었고 조금은 부자연스러웠던 기억이 난다.“아주머니 이것 얼마지요?””5200원이요”“아이구 생각보다 비싸네”혼자 중얼 거렸는데 이 말을 들은 아주머니가 대뜸 하신 말씀은 “비싸문 다른데 가서 사시오”너무나 퉁명스럽게 쏴 붙였다. 잠시 나는 말을 잊지 못하고 당황하고 무안해서 얼굴이 붉어지고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몰라 서성대다가 “그냥 주세요”얼른 돈을 치르고 물건을 싼 비닐봉지를 들고 황급히 나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몇 번은 더 있었던 것 같다. 나의 말과 행동에 처음 만난 이웃들이 당황해 하고, 그런 당황한 모습에 다시 내가 당황해 했던 기억들도 있다.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참 많이도 달라 졌다는 생각이 든다.처음부터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이나 이곳으로 새로운 삶을 위해 모여든 사람이나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들 서로를 알게 되었고 상호 보완되고 치유되어 이제는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제법 많은 부분이 하나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이제는 이곳 광양만큼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 곳이 없다.어디를 가든 항상 뇌리 속에 이곳,광양의 정경들이 늘 자리하고 있음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20여년동안 겹겹이 쌓이고 쌓인 삶의 방식들이 자연스레 나를 광양 사람으로 다 만들어 놓은 탓일 것이다.정확히 내가 살아온 51년 중 고향인 고흥에 있는 금산이라는 섬마을에서 초등학교까지, 그리고 광주에서 학교를 마치고 군에 입대하기 전 까지를 포함한 13년,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포함하여 약 10년, 군생활 3년, 포항에서 5년을 살았으니 이곳 20년이 가장 오랫동안 머문 곳이기도 하다. 금년부터는 부모님도 이곳으로 오셨고 내가 퇴직을 한 후에도 남은 여생을 이곳에서 마치리라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이곳이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이제는 가장 편안한 곳이기 때문이다. 함께 하여온 직장 동료들이, 그리고 이웃들이 모두 이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앞으로 더 많은 이웃들과 더 좋은 인연을 맺으며, 더불어 사는 지혜, 함께 어우러진 삶, 그리고 따뜻한 온기가 있는 이웃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또한 광양의 자랑거리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어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사는 이곳, 광양을 찾게 하고싶다. 입력 : 2004년 1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