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은사를 되새기며…
잊혀진 은사를 되새기며…
  • 광양신문
  • 승인 2006.10.09 10:43
  • 호수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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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렬 목사 / 마하나임커뮤니티교회
아침에 일어나면 스스로 옷도 찾아 입고 어설프지만 머리도 빗거나 묶고 멋도 내어 본다고 요란을 떠는 7살난 딸아이를 보면서 그시절 어설픈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었던 기억이 나는걸 보면 늦은 봄이거나 초여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 아이는 한살 많은 누나와 같이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었지요.키는 작았지만 야무진 행동으로 늘 어른들의 칭찬속에 밝게 자랐던 아이지만 역시 나이는 어쩔수 없었나 봅니다. 그날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오후 선생님의 종례시간이 유난히 길었나 봅니다. 인사가 끝나면 급히 가리라 마음먹고 힘을 주고 있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한껏 힘을 주었던 괄약근이 턱 풀린다고 생각되는 순간 어느새 구린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친구녀석들이 선생님을 불렀고 그 아이는 그때부터 괜히 미안한 마음에 징징대기 시작했지요. 선생님은 마흔이 훌쩍 넘은 점잖으신 남자 선생님이셨습니다. 항상 깔끔하시고 늘 갓 면도하신 듯한 푸른수염 그 아이에겐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지만 이미 오래전 두살때 아버지를 잃어서 아버지의 정이나 존재를 몰랐던 아이에게 선생님은 신비의 대상이거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있는 분이셨지요. 그런 선생님께서 다가오시더니 반바지 춤을 양쪽으로 잡으라 하시며 아이를 데리고 학교옆 냇가로 가셨습니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불어난 개울물이 뿌연 물안개가 올라와서 으스스 추운 그런 날이었지만 이미 나온 배설물로 인해서 아이는 바지춤을 내려야 했습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선생님은 아이의 몸을 씻기고 계셨지요 어느새 아이의 누나가 집에 가서 말했는지 옷을 챙겨 오는 누나의 모습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문제는 그 다음날 생겼습니다. 이미 창피한 일을 당해서 학교에 가기가 두려운 아이는 급기야 떼를 쓰며 학교에 안가겠다고 했는데 어머니는 그런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갔습니다. 꼬막손 붙들려 가는 아이의 심정은 만감이 교차하고 창피한 이 일은 어찌 수습할지 막막하기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우는 잠시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모아두시고 훈시를 하셨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경험을 이야기하셨거나 어린 동생을 잘 돌보라는 이야기를 하셨던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로부터 그날일로 놀림을 받았거나 창피해 했던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아이가 누구냐구요? 히히 그걸 꼭 말로 표현해야 하나요.그 선생님은 몇년 뒤에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때도 벌써 연세가 지긋하셨는데 지금은 훨씬 더 연세가 많이 드셨겠지요, 잊지 못할 선생님이십니다. 딸아이 가정통신문에 스승의 날 선물을 사절한다는 메세지를 받고서 괜히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양은 도시락에 김치 담아 보내거나 소풍날 담배 한갑 선생님께 드렸던게 전부였지만 고마운 마음 표현할 길 없어 늘 빚진 자로 살았던 그시절 사제간의 정이 이제는 삭막한 현실속에 꽃한송이도 순수하게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그런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래도 예쁜 편지나 감사의 메세지는 뭐라 안하겠지요!오늘 지금의 나를 있게한 그분들을 회상합니다. 어느새 그런 자리에 서서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야 하는 지금 모든 제자들에게 소중한 스승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받은 사랑만큼이라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난히 감사할 일이 많은 오월이 잊혀진 은사를 되새겨 더욱 나를 추스리게 합니다. 입력 : 2005년 0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