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평화
생명과 평화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09:48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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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완 민노당 광양구례지역위원장
세계에서 가장 난공불락으로 꼽히는 히말라야 졸라체 암벽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오던 중 크레바스(빙하 틈새)에 빠져 각각 양다리 뼈와 갈비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은 채 기적적으로 생환한 최강식·박정헌씨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산도중 크레바스에 빠진 최강식씨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크레바스에 부딪혀 양 발목의 작은 뼈들이 한꺼번에 부러지고, 발꿈치 뼈들까지 으스러진 상태였고 윗쪽에서 로프로 버티고 있었던 박정헌씨마저 필사적으로 잡아당기는 과정에서 갈비뼈 두 대가 순식간에 부러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박정헌씨는 최강식씨를 살려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2시간의 사투 끝에 두 사람 모두 사지를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심각한 부상을 입은 두 사람이 이후 티베트인 야크 몰이꾼 할아버지를 만나 구조될 때까지 겪은 어려움은 일일이 적지 않아도 모두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과 우정은 히말라야의 크레바스와 혹한의 추위, 뼈가 부서지는 아픔을 넘어 둘을 연결한 하나의 생명 줄을 더욱 튼튼하게 이어 주었던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절벽한 상황에 처했다면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선택했을까요?
'생명'과 '평화'를 주제로 지난해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하여 제주, 부산, 울산,경남지역 8,000리 길을 순례하며 30,000여명의 사람들과 만나온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올해 3월 1일부터는 우리 광양에서 탁발순례를 시작합니다.

순례단은 소식지에서 '우리 사회는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고, 편리해졌고, 부분적.현상적으로는 대단히 좋아졌지만 구체적인 인생살이의 내용은 생명위기와 공동체 붕괴로 가고 있다'라고 밝히며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개발논리, 힘의 논리, 경쟁논리, 독점논리로 문제를 풀어왔다. 그런데 위기가 더 커졌다면 이제는 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그 해답을 찾아 길을 걷고 있다고 합니다.

3월 6일까지 진행되는 광양지역의 탁발순례에서도 우리지역의 많은 분들과 만나고 소통하며 생명과 평화의 희망을 나누고 지역의 중요한 정책이나 문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노력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우리지역 역시 엄혹했던 근현대사속에서 치유하지 못한 비극적인 냉전대결의 상흔이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아니, '세월이 약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냥 그렇게 묻어두고 살아왔습니다. 제주의 4.3이나 여순사건과 결코 따로 떨어진 역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무관심과 회피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백운산과 섬진강, 광양만의 넉넉한 자연의 마음으로 치유해 가며 생명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야겠습니다.

미국의 대북봉쇄정책으로 인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한반도의 불안을 바로 나의 일, 사랑하는 아이들의 미래라고 생각하며 생명평화적인 관점과 실천으로 해방60년, 분단 60년이 되는 올해에는 반드시 한반도의 평화를 함께 만들어 가야겠습니다.

또한, 이미 과잉으로 넘쳐 버린 '경쟁과 효율'이 아닌 '연대와 공존'으로 새로운 광양만의 백년대계를 세워가야겠습니다.

해발 수천미터의 가혹한 조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가 발 딛고 사는 광양의 생존 여건 또한 나날이 팍팍하기만 합니다. 한마디로 해고와 불황, 빈곤의 크레바스는 갈수록 더 크게, 많이 생겨나며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이 고용불안과 실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남이 아니면 내가, 다른 부서가 아니면 우리 부서가, 남의 회사가 아니면 우리 회사가, 다른 가게가 아니면 우리 가게가 실직과 폐업의 벼랑으로 떠밀어 지는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단연코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서로의 생명 줄을 함께 움켜 쥐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땅을 밟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으며 획일과 출세가 아닌 다양성과 창의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희망의 광양만을 꿈꾸며...

인간을 허락않는 졸라체 암벽
하산길에 기다린 크레바스
생사 마지막 순간
가슴·갈비뼈가 부러져나가도
형은 동생을 버리지 않았다
한줄 로프 끊지 않았다
산사람의 믿음, 죽음보다 강했다
<글 조연현>
 

입력 : 2005년 03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