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위기, 체험관광에서 희망 찾자
농촌의 위기, 체험관광에서 희망 찾자
  • 지정운
  • 승인 2012.12.17 09:37
  • 호수 4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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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박물관은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의 체험공간이기도 하다. 박물관 판매대에서 판매되는 웨피옹 딸기시럽, 술 등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싣는 순서
1. 전통문화 체험으로 도시민의 시선을 사로잡은 부여 기와마을
2. 소셜커머스로 체험객 유치, 마을기업으로 성장한 논산 포전마을
3. 가족 농장체험 프로그램으로 성공한 독일 라우터바흐 마을
4. 독일농촌 관광마케팅의 롤모델 ‘쯔바이텔러란트’
5. 농촌관광 마케팅 기법 ‘쯔바이텔러란트 카드’
6. 복합산업화를 통한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 벨기에 딸기마을 웨피옹
7. 프랑스 릴 지역농업생산자 협회의 그린투어리즘(Goutez notre nature)
8. 에필로그 도시민과 농촌간의 교류, 새로운 농촌관광전략이 절실하다

계절 딸기 유통과 서비스 연계 복합 산업화 이뤄

 독일 흑림지대 농ㆍ산촌이 빼어난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농촌체험과 휴양을 결합한 민박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면, 딸기로 유명한 벨기에 웨피옹(Wepion)마을은 1차 농산물과 2차 유통과 가공식품, 3차 교육ㆍ문화서비스의 복합산업화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한 사례다.

벨기에 최고의 딸기 브랜드를 자랑하는 웨피옹은 벨기에 남부 나무르주의 주도 나무르(Namur) 25개 마을 가운데 하나인 인구 7000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조그만 마을이 벨기에는 물론 네덜란드나 프랑스 등 유럽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130년 역사를 갖고 있는 ‘딸기’ 때문이다. 웨피옹의 역사를 한마디로 집약한다면 ‘딸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차 산업인 딸기생산, 2차 산업인 경매장을 통한 딸기의 유통, 3차 산업인 딸기박물관을 통한 교육ㆍ문화 서비스 삼박자를 갖추며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 딸기의 고장 웨피옹. 그러나 딸기 재배가 처음 시작된 곳은 웨피옹 마을이 아니었다.

벨기에 딸기는 독립국가 벨기에 탄생과 비슷한 1830년대 웨피옹 인근 북쪽지역에서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웨피옹에서 딸기가 본격적으로 재배된 것은 대략 130년 전인 18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딸기 재배 초기에는 개인 농가가 부수입 개념으로 재배했기 때문에 소규모 농지가 주를 이뤘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가족 단위 개별 농가가 담당했기 때문에 장이 설 때마다 먼 거리를 이동해 판매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간 유통을 담당하는 중간 상인이 생겨났고, 이들이 농가를 방문해 딸기를 사들여 되파는 과정을 통해 유통되기 시작했다.

중간상인의 출현으로 인한 마케팅의 변화는 최적의 토양과 지형, 일조량 등 최적의 재배환경을 지닌 웨피옹 딸기를 벨기에 최고의 딸기 브랜드로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헐값 매입 등 횡포로 중간상인들은 농민들과 갈등을 빚었다.

이같은 횡포에 맞서 웨피옹의 딸기 농가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직접 유통하게 되었는데 중간상인들이 조합을 통해 딸기를 구매하게 되면서 조합원들이 시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1930년대 500ha에 달하던 벨기에 딸기 재배지 가운데 300ha가 웨피옹 지역에 있었다. 당시 벨기에 전체 딸기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큰 규모였을 정도로 1950년대까지 웨피옹 딸기 재배의 황금기였다.

웨피옹 경매장에서 상품을 검수하고 있는 모습과 웨피옹 딸기, 웨피옹 경매장 홈페이지 캠쳐.

생산량 3% 고품질ㆍ역사성 담아 최고 브랜드로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딸기 재배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연작으로 인한 지력 약화에 따른 병해충, 인건비 상승과 세금 부과, 부동산 가격의 폭등 때문이었다.

재배 면적당 세금 부과는 소규모 재배 농가들의 딸기 재배 포기와 모든 거래를 경매장을 통해 이뤄지게 한 경매시스템 도입의 계기가 됐다. 또 웨피옹의 빼어난 자연 환경으로 전원주택 건축이 증가하며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는데 경작지에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딸기 재배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1970년대 말경 벨기에 전체 딸기 재배면적은 200ha밖에 남지 않았는데 재배지에 주택이 들어서면서 당시 웨피옹은 이제 딸기 재배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어요. 소규모 농가가 경작을 포기하면서 숫자는 줄었지만 농가당 재배면적이 증가해 전업농가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됐지요. 기업형 농가가 생기면서 딸기 재배가 다시 활성화됐는데 딸기 재배기술의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됐어요.”

웨피옹 딸기박물관 회계담당 가이 라쿠아 씨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기업형 농가가 생기면서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연구를 하는 전문가와 연계가 시작됐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현대적 개념의 영업과 홍보 마케팅이 접목되며 대규모 기업형 농가로 바뀌게 된 것. 하지만 지금은 생산량이 과거보다 크게 줄어 웨피옹의 딸기 생산량은 벨기에 전체 생산량의 3% 수준인 1000~1500톤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웨피옹 딸기는 여전히 벨기에 최고의 딸기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다. 최적의 딸기 재배조건과 잘 관리된 품질, 경매장을 통한 유통시스템, 그리고 130년 최고급 딸기 생산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다른 지역 생산자들도 ‘웨피옹 딸기’라는 브랜드를 갖고 싶어 할 정도라고 한다.

대학에서 농업을 가르치며 딸기 기술 발전에 기여해 온 앙드레 상드레 씨는 취재팀에게 웨피옹 딸기 포장재(500그램짜리 표준 딸기 상자)와 유사한 다른 지역 포장재를 보여주며 웨피옹 딸기에 대한 선호도를 자랑하기도 했다.

생산된 딸기는 ‘웨피옹 경매장(La Criee de Wepion)’을 통해 유통되는데 웨피옹 경매장은 오로지 딸기만 취급하는 유일한 경매장이다. 이 경매장은 딸기 유통을 통해 지역 전체 딸기 생산자의 네트워크뿐 아니라 벨기에를 넘어 유럽 딸기 재배자들과 관계를 맺게 됐다. 딸기 생산이라는 1차 산업을 경매장을 통한 딸기 유통이라는 2차 산업으로 연결한 사례다.

계절 딸기라는 1차 생산물은 딸기잼, 딸기주스, 딸기술, 딸기시럽 등 특산물 가공으로 이어졌다. 웨피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딸기박물관을 통한 교육 문화서비스라는 3차 관광산업으로 복합산업화로 발전시키며 마을의 관광산업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벨기에 웨피옹=지정운 기자/지발위 공동 취재단


딸기 정원 컨셉을 맡았던 마티캐서린 웨피옹 부시장(가운데)이 딸기 산업에 대해 성명 중이다.

딸기박물관은 주민들 기억과 삶의 공간
딸기정원 등 연계 투어 개발 브랜드 홍보

 1970년 건립된 딸기박물관은 웨피옹마을의 역사를 기억하는 ‘기억의 장소’이자, 현재 지역 주민들의 삶을 반영해주는 ‘삶의 장소(어메니티 공간)’이면서 마을의 작은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시각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규모지만 주민들로 이뤄진 자원봉사자들은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부심을 갖고 운영하고 있다.

딸기박물관은 딸기 재배의 역사, 주민들이 과거 어떤 경제 활동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역 문화유산을 발견하는 유일한 장소다. 박물관을 들어서면 웨피옹의 역사가 왜 ‘딸기’로 집약되는 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두 3개의 테마로 구성돼 있는데 박물관에 들어서며 딸기 재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림과 만화를 접하게 된다. 벽에 걸린 지도, 그림, 사진 등이 여러 시대에 걸쳐 변모해온 웨피옹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옆에는 딸기가 어떻게 재배되는지, 또 필요한 기구는 무엇인지 등 딸기 재배와 관련 도구 등이 전시돼 있는 공간, 딸기에 대한 관련 서적이 보관돼 있는 2층 도서관, 딸기로 만든 잼이나 사탕, 그릇 등을 전시해 놓은 공간으로 돼 있다.

전시실은 해마다 주제를 바꿔 특별전시를 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는데, 2010년에는 브뤼셀과 왈로니지방의 관광진흥사무소가 조직한 ‘2010 왈로니 만화제’ 차원에서 ‘만화와 우표속의 딸기와 여우’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렸다 한다.

관람객들은 이 곳에서 광고, 영화, 문학 등에 나타난 잼, 디저트, 사탕 등 가공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딸기를 발견하게 된다. 관람을 모두 마치고 나오면 입구 판매숍에서 잼이나 주스, 시럽, 술 등 특산물을 구입할 수도 있다.

딸기 박물관은 전시뿐 아니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1시간짜리 교육(에니메이션)과 퍼즐 등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 박물관 맞은편 딸기정원과 연계한 투어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딸기정원 컨셉을 담당했던 마티 캐서린 부시장은 “학교나 단체 등 900여 곳에서 농장이나 정원을 방문해 체험교육을 하고 있다”며 “딸기 수확기간이 짧아 다른 작물을 심어 테마를 다르게 해 꾸몄는데 연간 3000여명이 박물관을 방문해 관람하거나 정원과 연계한 체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물관 건물은 나무르시 소유이다. 하지만 유급직 직원 1명에 대한 인건비와 유지관리비는 1~3유로의 입장료와 박물관 내 딸기 가공식품 판매숍 등의 수입으로 마련하고 있을 정도로 웨피옹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관리, 운영하고 있다.

웨피옹마을의 작은 박물관은 관광산업화를 꾀한 130년 역사 웨피옹 딸기의 힘과 브랜드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