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라는 이름으로 어린이 학대하는 사회
공부라는 이름으로 어린이 학대하는 사회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4.24 09:44
  • 호수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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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어린이의 달!
오늘이 지구의 날인데, 인간의 망동으로 자연이 상처를 입은 탓으로 철없는 더위가 찾아왔다가 슬그머니 물러나고, 싱싱한 신록의 5월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5월의 주인공인 이 땅의 어린이들 생각에 펜을 든다.
오늘 우리는 이소연 우주인이 우주에서 바라다보았듯이 국경 없는 세계화 시대, 지식.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우주인을 양성하고 그밖에도 각 방면으로 우수한 인재를 양성할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이 중대한 임무를 맡은 것이 이 나라의 교육이다. 국가 백년의 큰 계획인 교육이 수십 년 간 갈팡질팡하는 교육정책으로 인해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왔다. 그 그늘에서 학생들만 희생당해 왔다. 학교가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황폐화 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학교 자율화를 강력히 밀어 붙이고 있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측면에서 이 정책을 놓고 성급히 왈가왈부할 것은 못된다. 그러나 자율화라고 내세운 것들이 3,40년 전이나 별반 다른 것이 아닌 상 싶다. 소위 3불 정책을 시행하면서 마련되었던 각종 규제들을 일시에 풀어놓고, 우열반 편성, 0교시 학습, 심야 보충에 강제적 자율 학습 등이 다시 나타났다. 중앙정부가 장악했던 감시 감독권이 지방 교육청과 학교장에게로 위양되었다.

현실적으로는 학교장의 책임 하에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즉 학교 자율화가 된 것이다. 아니다, 학교장 자율화가 된 것이다. 학교 자율화라면 최우선적으로 교육의 실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자율권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자율화는 그 알맹이가 교육감과 교장에게 쥐어졌다. 자율을 금성출판사의 국어사전은 ‘남으로부터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의 행동을 자기가 세운 규율에 따라서 바르게 절제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에게 ‘자율’학습을 시킨다고 하면서 그 말과는  다르게 100% ‘타율’학습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학교장에게 위임된 자율권은 학교장 마음대로 하라는 자율이지, 학생이 주인이 된 자율이 아니다. 이번에 교육당국이 내어놓은 교육자율화 정책은  교육감 마음대로, ‘학교장 마음대로’이다. 그래서 이 자율화는 0교시 수업으로 학생들에게서 아침밥 제대로 챙겨 먹을 자유를 빼앗았다. 방과 후 자율학습은 저녁밥 챙겨먹을 자유도 빼앗았다. 심야 공부 자율화는 잠을 잘 ‘자율’을 빼앗아 자율신경을 망가뜨릴 것이다. 신체의 성장. 발육. 면역 기능을 담당하는 호르몬 분비는 잠을 폭 잘 때에 가장 왕성하다. 낮 시간의 원기 회복, 뇌에 입력된 정보를 기억하는 기능도 수면 중에 일어난다. 의학계에서는 유치원생 11~12시간, 초등 저학년생 10~11시간, 고학년생 9~10 시간의 수면을 권한다. 중고등 학생이면 8시간 전후의 수면을 취해야 높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학교 수업을 감당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성인들이 잠은 자지 않아도 공부는 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신조어가 ‘4당5락’이라던가. 이렇게 잠도 못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외었다가 시험장을 나서는 순간 잊어먹는 토막 지식 입력에 심신을 탈진케 하는 우리 학생들의 설 자리가 어디인가.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어린이의 체력인증제 실시 결과 아이들의 비만 도는 심각한 반면 유연성과 근력 등 체력이 기준에 훨씬 미달임을 발견했다. 교육의 3대 목표가 지덕체의 균형 있는 발달을 조장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체, 곧 육체의 건강이 기본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육 현주소에는 지(知)만 있지 덕(德)과 체(體)는 없다. 2천 수백 년 전 고대 중국에서는 여섯 가지 교육 과목이 있었다. 곧,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이다. 먼저 인성의 기본인 예절과 감성을 기르는 음악을 배우면서 활쏘기와 말 타기로 체력을 단련한 연후에 독서와 산수를 배웠던 것이다. 오늘의 학교 교육이 부끄럽지 않은가.

할 말이 많으나 지면이 용서하지 않으니, 결론을 말하겠다. 이와 같이 아이들을 무한 경쟁의 전쟁터로 내모는 학교나 교사. 학부모의 행위가 바로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우리 어린이의 심신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어린이 학대’라는 것을 일깨우고자 한다. 이것이 이 글의 화두이다. 참고로 1997년에 한국보육교사회가 창립총회 시 선포한 ‘어린이 권리 선언’ 주에서 두 조문을 적기한다. ‘하나, 어린이는 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나, 어린이는 자연 속에서 자라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