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자긍심을 좀 먹는 촌지
기자의 자긍심을 좀 먹는 촌지
  • 한관호
  • 승인 2008.10.30 09:23
  • 호수 2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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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을 두고 정가가 시끌벅적하다.
국감장에서 사진기자들이 자신을 향해 셔터를 누르자 반말에 욕설을 한 행위를 두고서다. 야당에서는 장관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고 장관답지 않은 천박한 행위라며 관련 기사와 실명으로 글을 올리는 문체부 홈페이지 등에 누리꾼들의 비난성 댓글이 꼬리를 물고 있다.  

자긍심 하나로 먹고 사는 기자들이 오늘날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됐나. 이번 사태를 두고 ‘누가 기자직을 개 값으로 만들었냐’고 탄식하는 손석춘의 글을 읽으며 지난 10여년 몸담았던 남해신문사 시절을 되돌아보게 됐다. 이번 문체부 사태와는 다른 차원이나 남해신문에서 겪은 별별 일들을 몇 회에 걸쳐 회고한다.  

신문사 기자라는 직업으로 인해 곤혹스러웠던 건 결혼 문제였다. 일 년 간 연애를 하다 드디어 결혼을 한다고 들떠 있는데 처가 쪽 반대가 심했다. 창원에 사는 손위 동서 부부(처형은 고등학교 3년 후배다),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 미국 사는 큰 처형과 처제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콩깍지가 씌워져 결혼을 밀어 부쳤고 지금은 처가에 사람 도리는 하는 사위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그때 결혼 반대 이유가 다름 아닌 쥐꼬리만한 월급 때문이었다.

90년대 중반, 일주일에 이틀은 밤샘이 기본이요 취재, 기사작성에서 교정과 교열, 게다가 사진기자를 따로 두지 않아 사진 촬영까지 했다. 더구나 매주 금요일은 새벽 6시에 나와 1만 5천여부의 신문 발송 작업에다 100여부씩을 들고 남해읍 상가를 돌며 배달까지 하는 중노동이었다. 그럼에도 월급이라야 100만원에 못 미쳤으니 어느 딸 가진 부모가 아이구 내 사위 하랴.

하지만 그 박봉에도 촌지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
한, 일 장애인 교류 행사로 일본에 갔다. 어려운 길을 간 김에 남해 향우가 경영하는 MK 택시를 취재하기로 했다. 일어를 못해 손짓 발짓으로 간신히 신간센 표를 끊어 도착한 교토, 취재가 끝나고 제일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고는 숙소로 갔다. 그런데 MK에서 임대해 사용하는 숙소에 내리자 회사 관계자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무심결에 뭐냐며 받으니 한국에서 일본까지 왔고 더군다나 고향 후배이니 차비라도 하라며 회장님이 주는 거란다. 결단코 받지 않겠다며 겨우 사양했다. 손에 만져진 봉투에서 두께를 느낄 수 없었으니 추측컨대 현금 몇 만원이 아닌 수표였던 것 같다.

훗날 MK 부회장이 회사를 방문한 남해군수와 의회 의원들에게 ‘MK취재를 오는 언론인, 방송인들이 은근히 촌지를 바라거나 받아 가는데 그 사람은 참 특별했다’며 필자의 안부를 묻더란다.

촌지란게 주로 흠이나 부정 따위가 보도되는 걸 막기 위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훈훈한 미담이나 성공 사례, 상을 받았다는 소식 등을 소개하는 데도 돈을 주려한다. 심지어 청소년을 가르치는 학교, 종교계에서 조차 봉투를 내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취재를 나가면서 촌지를 어떻게 거절할 것인지 선배에게 묻는 경우가 생길 정도였다.

어느 날 남해신문에 한국 언론사에 유래가 없는 기사가 실렸다. 어느 중학교에서 기자에게 촌지를 주려했다. 아무리 안 받으려고 해도 슬리퍼를 신고 교문까지 따라 나와 봉투를 내밀었다. 남해신문은 일절 촌지를 받지 않으니 제발 그러지 말라는 취재수첩이었다. 교육청에서 난리가 났으나 이 일로 촌지 문화가 상당히 근절됐다.   

최근 충남 공주에서는 골재채취업자들에게 금품을 갈취한 기자 3명이 구속되고 여러명이 불구속 입건되는 사태가 터졌다. 이를 보도한 대전충남 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가 경찰에게 언론을 상대로 지역 경찰에서는 하기 힘든 수사를 했다고 추임새를 넣자 수사를 하지 않으면 골재채취업자가 기자를 죽이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하니 그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된다. 

심규상 기자가 겪은 일이다.
국세청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대기업 세금을 감면해주려 했다. 국세청 계장이 일반 서민도 아니고 어떻게 대기업 세금을 깎아 주느냐며 반발, 충남도청 기자실에서 양심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어느 방송, 어느 언론도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오마이뉴스. 보도가 나가자 국세청 간부, 대기업 임원진들이 명예훼손 운운하며 협박하고 ‘억’ 소리 나는 광고를 주겠다고도 하며 기사를 내려달라, 더 이상은 보도하지 말라며 회유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관련 기사가 줄기차게 나갔다.

기자의 존재 가치는 자긍심이다. 내가 쓰는 기사가 지금 보다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사명감이다. 그런 기자들이 금전 몇 푼의 욕망에 자기의 존재 가치를 부정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