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의 추억
섬진강의 추억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4 14:06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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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 호 / 농촌진흥청축산기술연구소 연구원
주말이나 휴일이면 우리 가족은 연구소에서 직원들 앞으로 할애해 준 가족농장엘 간다.
2평 남짓한 텃밭을 아기자기하게 고추, 상치, 방울토마토, 오이, 참외, 깻잎, 치커리, 넝쿨, 콩, 가지 등등 참으로 여러 가지 것들을 알뜰살뜰 화초처럼 얌전하게들 가꿔 놓았다.

우리도 아내가 욕심을 내어 미쳐 일구지 못하고 포기한 가정의 터까지 포합해 남들보다 3배의 땅을 차지하고서 골고루 모종을 사다 심었다.

봄날의 누렇던 흙밭이 짙푸른 초록으로 탈바꿈한 여름날이 되자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녀석은 책에서 본 ‘서리’란걸 해보겠다며 남의 밭으로만 손을 뻗는다.

그때마다 ‘서리’라는 의미가 옛날처럼 낭만적인 놀이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느라 힘이 들고 심지어 노파심에서 ‘도둑’이란 단어까지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대로 아이는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빠가 어렸을때’라는 책에선 서리를 해도 재미로 하면 괜찮다했다며 해 보고 싶어 안달이다.

철없는 아이와 실강이를 하다가 그래도 ‘도덕성 논란’까지는 구애받지 않고 서리를 하던 나의 옛 추억이 그리움으로 살아난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어느 겨울방학때의 일이다. 시골의 겨울밤이란 기고 적막해서 수시로 밤만되면 이친구 저친구의 사랑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며 고구마도 굽고 밤도 굽어 먹으면서 재미있게 노는 거이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그날은 우리집 사랑에 모여 또 여느 때처럼 내기 놀이를 했는데 우리편이 이겨서 진 편에서 닭을 삶아 오기로 하였다.
깊은 칠흙같은 밤에 부모님이나 가족 몰래 우리끼리 삶아 먹는 닭고기의 맛이란 진시황제의 성찬에 비할까!

먹고 남은 뼈들은 몰래 ㅇ리를 눈 감아 준 멍멍이에게 진상하는 거으로 우리들의 닭잡아 먹기 내기놀이는 완벽하게 완전범죄를 꿈꾸며 창문이 희뿌연 밝아오는 새벽을 맞는다.
그때부터 곯아 떨어져 떠매가도 모르는 단잠을 자는데 갑자기 우리 할아버지의 노기찬 고함소리에 아연실색!

아! 간밤의 그 맛나던 닭이 바로 우리집 닭이였다니!!
까까머리들의 겨울 방학과는 달리 개구쟁이 초등학생들의 여름 방학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으로 더욱 날 안타깝게 한다.

그 시절의 우리들은 맨날 섬진강 하구에 위치한 동네 앞 백사장에서 모여 노는 것이 정해진 하루일과였다.
하루 종일 강에서 놀면서 강을 헤엄쳐 횡단하여 건너편 산에 올라 꼭대기까지 오르면서 칡을 캐먹기도 하고 산토끼를 쫓기도 하며, 나무 사이를 건너 뛰는 다람쥐를 향해 고무 총을 쏘기도 하고, 오소리가 도망치는 뒤로 돌팔매질을 하기도 했다.

놀다가 다시 강을 건너 백사장으로 돌아오면 배가 고파도 여름날엔 자연도 우리에게 줄게 별로 많지 않던 때라 갈대 뿌리나 띠뿌리 같은 풀뿌리로 허기를 채우고, 운이 좋은 때는 청무우나 수박서리도 하고 다시 모래판에서 재미있게 놀았다.

그때는 강의 절반은 백사장이였다.
씨름, 모래밭 달리기, 공차기 등 갈대밭 속에 누워 이런 저런 얘기와 때때로 구름 만드는 비행기를 눈으로 쫓다가 단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어둠이 깃들면 마을 여기 저기서 “병호야!””종열아!”부르는 소리에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그런 우리의 놀이터와 사랑방과 원두막이며, 유년기의 보금자리이던 그 넓던 백사장과 강이 무자비한 모래 채취로 인해 강바닥은 깊어지고. 광양제철소의 설립으로 인해 지금은 강이 아닌 바닷물이 유입되어 놀이터와 사랑방이며 원두막이고 보금자리이던 그 강과 백사장을 감쪽같이 사라지고 이 쪽 강둑에서 저 쪽 산밑까지 넘 푸르게 가득히 흐르는 강물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밤이나 낮이나 시커먼 강물은 이제는 예전 소년 소녀들의 놀이의 하나이다 ‘서리에 도덕성 논란까지 언급해야 하는 “그래서 감옥에 가요?” 하고 묻는 내 아들아이의 근심에 찬 검은 눈동자 만큼이나 애조틱한 두려움을 안겨준다.

그런데 인간의 감정은 요상스럽다. 내 고향의 강물은 가득히 넘실대서 무섭고 내 아내 고향의 냇물은 너무 실개천이 되어버려쓸하고..

 

 

 

입력 : 2004년 12월 0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