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걱정 노후 걱정, 울고 싶은 ‘올드보이’
자식 걱정 노후 걱정, 울고 싶은 ‘올드보이’
  • 정아람
  • 승인 2013.05.20 09:06
  • 호수 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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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마음에 아내에게 술 한잔 하자고 하면 “그럴돈 있으면…”

왼쪽부터) 도영기 씨, 임재황 씨, 서승만 씨, 김종수 씨, 이산호 씨.

5월의 어느 날 새벽 6시, 마동 한 김밥 집에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3500원 짜리 라면 하나를 시킨다. 아내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몇 달째 아침을 라면으로 해결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새벽에 출근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라면만 향해 있던 시선이 시계로 향하더니 한 젓가락 남은 라면과 국물까지 허겁지겁 먹은 후 휴지로 이마를 쓱 닦는다.

오른쪽 손에 물 컵을 쥔 채 잠시 먼 곳을 바라본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가벼운 한숨소리와 함께 자리에 일어나 김밥 집 앞으로 도착한 버스에 몸을 싣는다.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아빠와 남편의 역할을 위해 일터로 나간다. 뉴스를 봐도 온통 어지러운 소식들뿐이다.

요즘처럼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때론 울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눈물을 삼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남자들의 눈물은 세상에 태어남을 알리는 첫 울음, 부모 형제의 죽음 앞에서 흘리는 눈물만이 다른 사람 앞에서 흘리는 눈물일 것이다. 

40대 그리고 50대 그들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남편, 아버지의 무게를 짊어진 어깨는 앙상하게 축 늘어졌다. 올드보이의 쓸쓸한 자화상이다.

요즘은 병원엘 가도 40대 중후반부터 50대 이상 남자 환자를 자주 볼 수 있다. 사망률이 여자의 3배나 되고 특히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7배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위기 앞에 선 40~50대 남자들의 현주소다. 앞만 보고 달려오니 젊은 날 떡 벌어진 어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깊게 파인 주름을 보고 있으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괜한 원망도 해보지만 한숨만 더 나올 뿐이다.

위기에 선 40대와 50대 남자 5명을 만나 솔직하고 리얼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5월의 어느 날 새벽 6시, 마동 한 김밥 집에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3500원 짜리 라면 하나를 시킨다. 아내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몇 달째 아침을 라면으로 해결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새벽에 출근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라면만 향해 있던 시선이 시계로 향하더니 한 젓가락 남은 라면과 국물까지 허겁지겁 먹은 후 휴지로 이마를 쓱 닦는다. 오른쪽 손에 물 컵을 쥔 채 잠시 먼 곳을 바라본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가벼운 한숨소리와 함께 자리에 일어나 김밥 집 앞으로 도착한 버스에 몸을 싣는다.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아빠와 남편의 역할을 위해 일터로 나간다. 뉴스를 봐도 온통 어지러운 소식들뿐이다. 요즘처럼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때론 울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눈물을 삼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남자들의 눈물은 세상에 태어남을 알리는 첫 울음, 부모 형제의 죽음 앞에서 흘리는 눈물만이 다른 사람 앞에서 흘리는 눈물일 것이다.  40대 그리고 50대 그들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남편, 아버지의 무게를 짊어진 어깨는 앙상하게 축 늘어졌다. 올드보이의 쓸쓸한 자화상이다. 요즘은 병원엘 가도 40대 중후반부터 50대 이상 남자 환자를 자주 볼 수 있다. 사망률이 여자의 3배나 되고 특히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7배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위기 앞에 선 40~50대 남자들의 현주소다. 앞만 보고 달려오니 젊은 날 떡 벌어진 어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깊게 파인 주름을 보고 있으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괜한 원망도 해보지만 한숨만 더 나올 뿐이다. 위기에 선 40대와 50대 남자 5명을 만나 솔직하고 리얼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40~50대 아저씨들의 왁자지껄 ‘솔직 토크’

자식 걱정 노후 걱정, 울고 싶은 ‘올드보이’

답답한 마음에 아내에게 술 한잔 하자고 하면 “그럴돈 있으면…”


여기 다섯 남자가 있다.  A 기업 직장동료인 도영기(48)·이산호(48)·서승만(57)씨와 트럭 운전기사 임재황(59)씨, 자동차 정비사인 김종수(44)씨.

이들을 만나기 위해 봉사활동 현장으로, 포장마차로 찾아갔다.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이들은 토크 전 걱정이 앞섰다. 동료 혹은 형님한테 털어놓은 적밖에 없는데, ‘혹시 아내가 알기라도 한다면 어쩌지?’

그러나 우려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봇물 터지듯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졌다. 제각기 만난 다섯 사람의 입은 쉴 새가 없었다. 과묵한 모습은 어느새 사라졌다.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론 슬픈 이야기. 우리 시대 40~50대 남성의 얘기를 지상 중계한다.

영혼의 노숙자?


비판적 사회의식을 가졌지만 먹고 살기위해 굴종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워낙 복종에 익숙한 터라 직장 내에서 자신을 버려야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직장은 전쟁터다. 표정은 밝지만 마음은 한없이 불안하다. 서승만 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치고 들어오는 후배와 기억력은 감퇴되고 일도 손에 안 잡히는데 회사는 갈수록 많은 것을 요구한다”며 “매일 겉으론 조직의 머리인 양 으쓱대지만 속으론 꼬리로 전락할까 두렵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복종과 변혁의 이중의 세월이 아니겠냐. 그러면서 듣도 보도 못한 X세대가 사회로 진출했다”도영기 씨가 입을 열었다.

도 씨는 “자기 주관이 강하고 직설적이고 개인주의적 세대를 거느리고 하는 직장생활은 세대와 세대, 가치관과 가치관 사이에 끼어버린 ‘낀세대’가 되어버렸다. 위에서는 젊은 세대라고, 아래로부턴 기성세대라고 비난받았다”고 설명했다.

임재황 씨도 그 시절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다. “그때는 친구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는 시기이기도 했다. 20대엔 잘나봐야 그만 못나봐야 그만이었다”며 “언제부터인가 경제적 차이가 서서히 삶의 차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임씨는 “사회적 차이가 자존심의 문제와 결부되다보니 결혼 할 시기를 놓쳤고 지금까지 혼자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세대가 그러긴 했어도 결혼은 할 수 있지 않았겠냐”며 김종수 씨가 웃으며 받아친다. 김종수 씨에게는 그래도 집에 가면 세대를 함께한 토끼 같은 아내가 있었으니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지만 김씨의 행복도 그리 길진 않았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으로 인해 ‘집없는 서러움’을 몸소 감내해야 했다. 김 씨는 술을 한잔 들이켰다.

갑자기 찾아온 IMF를 온몸으로 겪으며 가치관의 변화, 사회구조의 변화를 경험한 이들. 하지만 이들을 더 씁쓸하게 하는 건 이런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자식, 복덩이? 웬수?


자녀문제로 대화를 시작했다. 사뭇 진지해졌다. 도영기 씨가 먼저 얼마 전 딸과 겪었던 얘기를 꺼냈다.

“스펙 없이는 취업하기도 힘든 세상에 내 자녀도 부족하게 키울 수 없어 어학연수를 보내줬는데 조금만 보태 달라는 게 300만원이었다. 내 노후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다.”

함께 식탁에 앉아 밥 먹은 지도 오래됐다. 장래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자녀들은 바쁘다는 말만 남긴 채 사라진다.

명확한 목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스펙을 위해서라면 다 해줘야하니 답답함이 앞선다. 걱정 가득 담긴 표정으로 도영기 씨는 말을 이어갔다.

“대학 졸업을 하면 무엇이든 스스로 했으면 좋겠는데 휴대폰 하나를 사더라도 나한테 다 물어본다. 언제까지 책임을 져야할지 막막하다”도영기씨의 말에 씁쓸한 웃음이 터졌다.

이산호 씨도 자녀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이 씨는 “아이들 키우느라 은퇴 후 대비는 생각지도 못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녀들에게 ‘열심히 해라’ ‘좋은 대학 가야 좋은 직장 간다’ ‘게임 그만 해라’라고만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인상 찌푸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자녀들을 키우느라 은퇴 후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고민이다.
서승만 씨는 “에휴. 이제부터 나도 소비를 줄여야지.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노후 생각을 하면 잠이 안온다”고 말했다.

모두들 한숨은 쉬지만 그래도 웃는다. 이유를 물으니 힘든 것도 약이 되는 살아갈 내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글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이왕 사는 거 웃으며 살기.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인생의 가장 큰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