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불고기, 전국 명품 음식 되려면] 짜장면ㆍ월병ㆍ공갈빵 한국속 중국 ‘인천 차이나타운’
광양불고기, 전국 명품 음식 되려면] 짜장면ㆍ월병ㆍ공갈빵 한국속 중국 ‘인천 차이나타운’
  • 이성훈
  • 승인 2013.11.11 13:26
  • 호수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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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거리, 중국식 근대 건축물 … 스토리텔링 가득


1. 광양불고기 유래와 현황   
2. 담양 떡갈비의 전통과 마케팅 기법   
3. 언양불고기의 경쟁력과 스토리텔링의 힘
4. 전주 한옥마을과 전주비빔밥, 콩나물국밥 
5. 짜장면의 원조, 인천 차이나타운
6. 부산 자갈치 시장의 전국 명소화 비결 
7. 광양불고기의 전국 명소화를 위한 과제


누구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중국풍 거리다. 마치 중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뚝 솟은 패루를 지나 계속 경사진 길을 300여 미터를 걸으면 T자형으로 길이 양쪽으로 나뉘고 주변 상가는 온통 중국의 거리에 온 듯이 느껴진다.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에 있는 차이나타운.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된 이후 중국인들이 모여 살면서 중국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 곳이다. 따라서 차이나타운과 주변지역은 개항기의 이국적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인천의 중요한 문화와 관광자원이다.



붉은색 간판과 홍등이 내걸리고, 음식점이나 진열된 상품들도 거의가 중국 일색이다. 이렇게 화려하게 단장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지만 이것들의 과거를 뒤집어 보면 누구보다도 눈물겨운 세월을 보내면서 이곳에서 화교 사회의 명맥을 이어 오신 분들이 바로 그 지역에 사는 화교들이다.

중구청(구청장 김홍섭)에 따르면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다른 나라에 있는 차이나타운과는 근본적으로 형성 구조가 다르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최초 노동자부터 근대 중국의 불안한 정국을 피해 이주한 중산층까지 포함해 중국인 거리가 형성된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근대화 과정에서 가까운 거리의 이점을 살려 주로 상업을 위해 이곳에 안주를 한 것이 대부분이다.


1882년 임오군란부터 화교 역사 시작

인천 화교는 약 130년 전인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의 군인과 함께 온 40여명의 군역상인들이 이 땅에 정착하면서 역사는 시작됐다. 이들은 주로 푸젠성, 저장성 등 남방인들로 청나라 군대에 물자를 공급하면서 조선 상인들과의 무역을 했다.

그 후 1884년 4월 ‘인천화상조계장정’(仁川華商租界章程)이 체결되면서 지금의 인천시 선린동 일대의 5000평 토지에 중국 조계지가 세워졌고 그해 10월 청국 영사관도 이곳에 세워졌다. 중국의 조계지가 생긴 후 중국의 건축 방식을 본뜬 건물이 많이 세워졌기에 이곳이 오늘날 말하는 ‘차이나타운’의 최초 형태라고 한다.



이후 원세개가 조선 통상 사무를 맡아 1887년에는 부산, 1889년에는 원산에 조계지역에 대한 담판을 성공시켜 중국 조계지역은 계속해서 확장됐다. 인천에 조계 지역이 설립되면서 화교 수는 급증하여 1883년 48명이던 화교가 1년 후에는 5배에 가까운 235명으로 늘어났고 1890년에는 화교가 약 1000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중국인들이 증가하면서 당시의 청나라 관청(청국 영사관)이 이곳에 설립되고, 이를 ‘청관’이라고 불렀는데, 일본인들은 이곳을 중국을 비하하는 명칭인 지나정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화교의 대부분은 인천을 상업 활동의 중심으로 삼고 사업 수완을 발휘해 중국에서 수입한 식료 잡화를 팔고 다시 조선의 사금 등을 중국에 보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의 전반적인 상권을 장악했다.

특히 인천 조계지 내의 화상들은 한국 전역에 퍼져 있는 화상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사업은 날로 흥성하게 됐다. 1898년 의화단(義和團)의 북청사변(北淸事變)으로 산동성 일대가 전란에 휘말리자, 이 일대 중국인들이 피난차 가까운 한국으로 대거 건너오기 시작했는데 이들도 주로 인천을 자신들의 집결지로 삼았기 때문에 인천은 부지불식간에 화교들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서울과 함께 화교들의 양대 세력권이 됐다.

당시 자료에 의하면 1884년 35척의 청조 선박이 인천과 마포항을 왕래했으며 1만 3000톤의 화물을 운반했다고 한다. 당시 조선을 청나라의 속국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청나라 사람들은 청나라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그 당시 조선에서는 귀한 물품인 비단, 광목, 농수산품 및 경공업품을 수입해 엄청난 이익을 획득했다.


장기 거주 목적으로 주거지 필요

이에 따라 장기 거주를 목적으로 인천에 상가 건물이나 주거할 집을 지을 필요가 생겨 중국식 건축에 필요한 목수, 기와공, 미장공들도 한국으로 오게 된다. 특히, 인천과 뱃길이 트인 산동성에서는 조선의 인천은 돈벌이가 잘되는 곳으로 소문이 번져 많은 산동인들이 서해를 건너 왔다.

1887년에는 산동 연태지방에 살던 왕씨와 강씨가 채소 종자를 들여와 채소 농사를 시작하니 당시 조선에서는 볼 수 없던 양파, 당근, 토마토 등이 모두 이들에 의해 전파됐다.

특히 중국의 상해, 청도, 연태, 석도 등에서 왕래하는 화물선이 기항하는 인천은 일본인 및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화교의 숫자도 많아 그들이 조차한 지금의 차이나타운이 좁아 경동, 신포동 일대, 용현동, 주안, 부평지역에 모여 살며 상업 활동 외에 채소 시장까지도 그들에 의해 성업을 이루게 된다.



청나라는 1894년 일본과의 전쟁(청일전쟁)에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손들고, 청나라의 수도인 북경은 서방세력에게 안방을 내주고 말았다. 타이완, 만주지역도 문서로만 중국령 일뿐 일본이 주인 노릇을 하니, 한국에 있는 화교들의 생활도 그리 안정적 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한국인에게는 대국인으로 행세하며 거들대던 세월도 한국 전쟁과 인천상륙작전으로 거의 파괴되고 만다. 영흥도 앞바다에 정박해 인천을 향한 함포사격을 정면으로 받은 곳이 지금의 차이나타운이다.


한국관광 100선 선정

인천 차이나타운은 옛 흔적이 잘 보존된 중국인 점포 주택이 즐비하고 화교인들이 만든 정통 중국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청관거리에는 유명 요릿집과 무역상들이 대거 자리를 잡으면서 인천 최대 상권으로 발전해 오늘날 1만여명이 북적이는 작은 중국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차이나타운 특구 내에는 정통 중국음식점은 물론 잡화특산품점, 음식재료점 등이 길게 늘어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차이나타운은 골목 곳곳에 볼거리가 가득하다. 삼국지 벽화거리, 패루(牌樓ㆍ중국식 전통대문), 청일조계지 경계계단, 한중문화관, 짜장면박물관, 중국식 점포 등이 대표적이다.

차이나타운 중심거리는 1884년 청국조계가 조성되면서 만들어졌다. 이 거리에서는 120년이 지난 지금도 치파오(중국 전통의상)를 입은 화교 상인들과 최근 새로 지은 중국식 근대건축물,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색의 간판, 홍등을 만나볼 수 있다. 거리에는 차이나타운의 대표음식인 짜장면과 월병, 공갈빵, 중국차 등도 맛볼 수 있다.


국내 첫 짜장면집 ‘공화춘’

차이나타운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식이 ‘짜장면’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짜장면을 만들었다고 하는 ‘공화춘(共和春)’이라는 식당이 있다. 공화춘은 1908년 무렵 지어진 중국음식점으로 중국 산둥지방의 장인이 직접 지었다는 중정형의 식당이다.

외부는 벽돌로 마감하고 내부는 중국 특유의 다양한 문양과 붉은색의 화려함으로 장식했다. 처음에는 무역상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곳으로 이용되다 중화요리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형 연회장을 갖춘 유명 음식점으로 그 명성을 날렸다.

공화춘은 현재 중구청이 건물을 매입한 후 건물을 개·보수해 화교의 생활사, 짜장면의 역사, 조리법 등을 소개하는 전시공간 및 짜장면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삼국지 벽화거리도 주요 볼거리다. 삼국지 벽화거리는 삼국지 속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 등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150m 길이의 대형벽화가 길게 펼쳐져 있다. 산책을 하면서 삼국지의 이야기를 보며 고사성어도 배울 수 있어서 배움의 터가 되고 있다.


차이나타운
국제관광 테마특구 개발 계획

인천 차이나타운은 과거 화려했던 영광을 점차 다시 찾아가는 중이다. 방문객 수가 2009년 215만명, 2010년 255만명, 2011년 270만명으로 날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지식경제부에서 주관하는 2009년도 지역특구 성과평가에서 우수특구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천시와 중구는 특구 지정 이후 정부와 지자체 예산, 민간자본 등을 투입해 본격적인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기반시설 확충, 중국어 마을 조성, 상권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야외문화공간ㆍ테마거리 조성 등 유무형의 관광인프라 개발과 투자가 진행했거나 추진 중이다. 중구청에 따르면 전체 30개 사업에 국ㆍ시비 323억원을 포함한 1929억원이 투입돼 경제파급 효과 3000억원, 고용유발 효과 2000명 등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매주 화〜일요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중국문화 체험과 토ㆍ일요일 오후 3시 열리는 거리예술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구는 특구발전을 위해 차이나타운을 국제관광 테마특구로 개발할 계획이다. 1957억원을 들여 관광인프라 구축사업 등에 쓰기로 했다. 인천항에는 올해 유난히 많은 크루즈가 입항하고 있어 중구청은 크루즈 관광객들을 차이나타운에 유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