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파의 한숨
어느 노파의 한숨
  • 광양뉴스
  • 승인 2013.12.02 10:35
  • 호수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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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식 광양시청 도시과 도시행정팀장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며, 어둠이 다가왔다. 나는 저녁 7시경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할머니가 저녁식사를 한 듯한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며 누구냐고 물었다. 정중하게 신분을 밝히고서 “할머니 명의의 세금이 체납되어 있으니, 형편이 어렵겠지만 협조해 달라”는 말을 꺼내었다.

그사이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아파트 현관문이 꽝 소리를 내며 굳게 닫혀 버렸다. 이후 두 번 정도 초인종을 눌러 보았으나, 할머니의 인기척은 들을 수 없었고, 이내 적막만이 흘렀다. 지난 9월 우리시가 지방세, 세외수입 체납액 일제징수 대책 발표 이후 할머니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최근 우리시 재정여건이 기업체 영업이익 감소, 경기불황 등으로 지방세입이 감소되고, 사회복지, 교육, 문화 재정수요는 증가추세에 놓여 있어 한마디로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쓸곳이 많다”고 내다볼 수 있겠다.

그래서 시는 어떻게 하면 세입을 늘려서 다함께 잘사는 행복한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고 그 자구책으로 체납세 징수 책임 공무원제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체납세 징수대상인 할머니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오죽했으면 체납되었을까를 생각하며, 감성적인 호소로 자발적 납부를 유도코자 하였는데, 본론도 안 들어보고 아파트 문이 닫혀버리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다음날 오후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목소리에서는 세월의 고단함과 피곤을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시골에서 일하고 있으니, 다음에 통화하자”는 말을 남기고 일방적으로 끊어 버렸다.

이후 약 보름 동안은 전화를 해도, 집을 찾아가도 도무지 연락이 안 되었다. 내가 생각할 때 특별히 여건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세금보다는 걱정과 근심이 앞서 나갔다.

며칠 후, 수소문 끝에 할머니가 낮에 자주 간다는 곳을 알 수 있었다.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고구마를 캐고 있었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반가움이 저절로 나왔다. 그동안 할머니는 “새벽부터 하루 종일 밤산에서 일하느라 전화 받을 정신도 없었으며, 저녁에는 밤 선별작업이 늦어져 귀가 시간이 늦었다”는 것이었다.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도무지 체납세 이야기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금이야기를 못 꺼내고 돌아설 즈음 “세금 때문에 왔지, 내일 저녁 집에서 이야기 하자”는 것이었다.

다음날 저녁 8시경 집으로 향하였다. 할머니는 “그동안 체납세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며 “밤, 고구마를 팔아서 한푼 두푼 모았고, 조금만 더 보태면 된다”는 것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약속시간인 다가왔는데도 납부가 안 되자 약간의 과일을 사들고 할머니집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지금까지 체납된 이유와 마음고생, 현재의 생활환경, 세상사는 이야기를 꺼내시며, 내내 한숨을 몰아 쉬였다. 그리고 내일까지 내겠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눈가에서 이미 이슬이 촉촉이 맺히고 있었다.
모든 국민은 자기소득이나 경제활동에서 부과되는 세금은 성실히 납부할 의무가 있다.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