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섬호정(蟾湖亭)에 올라
하동 섬호정(蟾湖亭)에 올라
  • 광양뉴스
  • 승인 2014.12.0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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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동 래<시인·수필가>
비온 뒤끝이라 하늘이 높고 깨끗하니 좋은 기분으로 이웃 골에 있는 섬호정(蟾湖亭)구경을 나섰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접해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그 이름이 마음에서 지울 수 없어 찾게 되었다. 이곳은 하동읍 읍내리 하동향교가 위치한 길마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으며 하동군민의 문화체육공간이다.

가면서 다압면 신원리에서 다리를 건너기전에 동쪽을  바라보니 기념탑이 높게 위용을 자랑하고, 그 위쪽에 아름다운 정자가 유혹하고 있다. 올라가보니 지형은 낙타 형으로 아담한 분위기로 조성돼 있고 일출보다는 일몰의 광경이 아름답게 보이고 섬진강의 물결은 너무 잔잔하니 호수 같이 보이는 곳이다. 일명 시인의 언덕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 고장 출신으로 시문학에 활동하는 명사의 시비 30여개를 다양한 조형물로 만들어 외부 관람객을 유치하고 있다.

내용을 알고 보니 하동군에서 사업비를 투자해 섬호정 주변을 중심으로 섬진강이 한눈에 보이게 하여‘시의 언덕’이라 이름 지어 군민의 정서를 함양하고 있다.

섬호정은 창건이후 하동군 내에서 경관이 가장 으뜸이고 정자 또한 아름다운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설립배경은 고을 수령의 부임 때 영접문(迎接門)으로 사용하던 것을 지역유림들이 이곳에 옮겨 세우고 섬호정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 연혁을 보면 일제 때 하동향교 직원이던 여종엽(余琮燁)등 지역 유림 35명이 출자하여 섬호정계(蟾湖亭契)를 조직하고, 옛 하동의 객사인 하남관(河南館) 영접문 계영루(桂影樓)를 사서 그 재목으로 건립하였던 것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2층 누각으로 되어 있다. 현판은 심상우(沈相宇)가 쓰고, 발기문과 상량문이 선명해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어 좋았다. 군민은 지혜를 발휘하여 아름다운 곳에 명품을 만들었으니 타의 모범이 아닐 수 없다. 

정자에서 바라보니 이름 그대로 섬진강은 호수 그 차체였다. 서남방향으로 바라보이는 전경은 저물어가는 백사장위로 물안개가 찻잔의 향기처럼 피어오르는 듯했고 바람은 쉬고 있다. 석양의 물결이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스펙트럼은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었다.

하동 섬호정.
하동포구 너머로 이어지는 망덕포구는 산 정상을 안고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아련한 영상으로 스쳐 보인다. 시인묵객이 아닌들 한수의 시가 떠오르지 않겠는가! 서북쪽을 바라보니 아쉽게도 처마가 가리고 가을로 물든 나뭇가지의 가림으로 선명하지 않으니 투명한 가슴처럼 보이지만 두고 올 수 밖에 없다. 돌아서는 아쉬움에 느낀 것은 월야(月夜)에 보아야 제값을 할 듯해 돌아오는 시월에 뜨는 상달을 한번 보고 싶어졌다.

정상의 전망은 우선 하동읍내를 내려 볼 수 있고 동쪽은 가까운 곳에 산이 접해있고 서북쪽은 백운산의 줄기가 길게 뻗어 다압면을 형성해, 지는 해를 가리고 있다. 섬진강이 잔잔히 흘러가기 때문에 느린 물살은 정체된 호수와 같아 붙인 이름이라 한다.

마치 우리고장의 금도와 길도를 호수로 보고 호자를 넣어 금호도(金湖島)와 길호도(吉湖島)로 불렀던 것처럼 말이다. 더욱이 정감이 두터워지는 것은 맞은편 매티재에 걸터앉은 무등암이 인간의 윤회를 품고 있는 듯하다. 또한 원동마을, 신원삼거리에 위치해 진상 비촌마을로 넘어가는 정상에 느랭이골은 수목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숨은 보배처럼 생각된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굴곡진 동산의 길을 걸으니 왕대밭은 대마고원을 연상케 하는 죽림으로 태고의 꿈을 품은 듯 고요하다. 듬성듬성 서있는 시비를 보며 걷게 되니 나도 신선이 된 기분이다, 봄여름을 지워버린 길은 이제 가을로 쌓여 추억을 심어 줄 것이고, 시구를 되뇌는 문학도의 꿈이 영글어가기를 빌어볼 뿐이다. 내 주위에도 이런 문학공원이나 예술동산을 만들어 청소년에게 문학의 꿈을 심어주기를 바라는 허황된 마음으로 다리를 건너니 먼 길에서 온 섬진강물은 망덕포구로 유유히 흘러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