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르네상스 시대, 미술관이 첫발이다!<9> 미술관, 지역의 브랜드 랜드마크로 재탄생
문예르네상스 시대, 미술관이 첫발이다!<9> 미술관, 지역의 브랜드 랜드마크로 재탄생
  • 김보라
  • 승인 2016.11.06 10:46
  • 호수 6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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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미술관 건축‘명세서’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건축도 미술의 한 영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건축적인 조형성과 미적인 조형성은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미술관 건축은 대개 건축가 중심의 건축적인 조형성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많지 않은 미술관과 박물관의 건물 역사도 짧은데다 건축적인 조형성을 강조한 나머지 현대미술 작품다운 조형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내 미술관이나 박물관 가운데 얼른 자랑할 만한 건물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유럽처럼 오래된 건축물이 거의 없거나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사용할만한 건축물이 그리 많지 않다.

베스트 웨스턴 프리미어 카타야카호텔

유럽의 경우 고딕이나 르네상스 양식의 왕궁이나 대저택이 미술관, 박물관으로 활용되곤 한다. 그렇다보니 외형에서부터 고풍을 보여주거나 품격 있는 장소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그 안에는 수백 년 동안 수집되어온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모은다.

유럽에서는 현대미술관으로 이름 붙여진 건물들을 보면 우선 외관에서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끌거나 이슈를 불러 모을 정도의 개성 있는 미술관들이 많다. 건축물이 단순히 건축가의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장소성과 미술관이라는 특징을 반영하는 ‘미술작품’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미국의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은 달팽이를 연상케 하는 외형이다. 건물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흡인력을 자랑한다. 1959년에 완공된 이곳은 기존 미술관의 디자인 관행을 깨뜨린 획기적인 건축이었다. 나선형 구조로 설계된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1백만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찾는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구겐하임은 랜드마크로서 문화시설의 가치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빌바오와 광양의 공통점과 차이점

유럽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미술관도 역시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일 것이다. 빌바오는 예전 교과서에서 철강산업이 발달한 세계의 도시 중 하나로 꼽았던 적이 있다. 세계적으로 잘나가던 철강, 조선 산업도시가 낙후되면서 옛 명성을 찾기 위해 도시 전체의 재개발 계획을 세우고 그중에 구겐하임미술관 건설을 포함시켰다.

오늘날 빌바오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많은 미술 애호가들의 순례지가 되었고 도시는 관광뮤지엄으로 먹고 사는 도시가 될 정도이다. 빌바오를 생각하면 광양시가 오버랩 된다. 광양의 조선 철강업이 쇠락의 길로 가고 있는 현실에서 도립미술관을 어떻게 짓는가에 따라 광양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카를스루에미디어아트센터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은 오를레앙철도의 종착역을 오르세미술관으로 변모시켰으며 영국 런던에서는 양조장이 예술가마을로 바뀌고, 스페인 마드리드의 카이샤포럼은 발전소의 변신이 이루어지는 등 각종 산업자원이 문화시설로 탈바꿈하면서 지역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은 반드시 건물이라는 형식의 틀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어느 정도의 기반 시설은 요구되겠지만 다른 관점의 시각도 가져야 한다. 광양역 주변이 전남도립미술관 부지로 선정된 이후 최근 구 광양역이 철거되었다. 아쉬운 대목이다.

유럽의 경우 다양한 산업유산을 체계적으로 재활용한다. 길어야 1백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네 건축 현실에서 이마저도 활용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경제적 측면보다 중요한 것은 장소성, 역사성 그리고 친환경성이라 할 것이다. 산업유산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문화재의 성격을 갖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소들이 장소마케팅과 관광유발 효과를 낳는 황금알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흔히 못생긴 땅에서 새로운 디자인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광양역이 좁고 낮은 건물이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이 건물을 해석하고 미술관과 연계시켜 나가는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산업유산의 새로운 변모 사례들

 

프롬나드 플랑테

프랑스 파리 12구에 버려진 거대한 폐선부지는 프롬나드 플랑테라는 아름다운 산책로이자 독특한 문화예술 및 상업공간으로 등장했다. 걷고 싶은 도시의 한 영역을 담당할 정도다. 고가철로는 예술의 다리가 되었다. 광양역에서 이어지는 경전선 폐선부지에 참고할 만하다.

영국 런던의 이스트 엔드는 매우 번성한 양조장 등 비즈니스지역이었다. 대부분의 양조산업이 교외로 이전하면서 낙후된 이 지역은 버려진 양조장 트루먼 브루어리 주변으로 젊고 전위적인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예술가마을로 변했다. 지금은 1만명에 가까운 마을이 되었다.

이스트 엔드

독일 남서부의 라인 강변에 위치한 카를스루에는 전쟁의 상흔 속에서 버려진 탄약 공장이 도시재생의 주역이 되는 미디어아트센터로 탈바꿈했다.

산업용 건물은 어떻게 지어야 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카를스루에 탄약 공장이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핀란드 헬싱키 남부에 위치한 카타야노카 감옥도 변신했다. 바로 베스트 웨스턴 프리미어 카타야노카호텔로 바뀐 것이다. 1837년에 지어진 혐오시설인 감옥을 2007년 멋지게 재활용해 선보였다. 건축과 다자인의 나라 핀란드다운 발상이다. 이와 같은 해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또 하나의 변신을 주목할 수 있다.

버려진 화력발전소 건물을 보존하면서 더 나아가 파격적 형태, 이미지, 이질적인 재료, 공간 구성 등을 통해 다른 차원의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랜드마크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독일 뒤스부르크에서는 제철소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 환경공원이 되었고, 독일 에센에서는 문 닫은 촐퍼라인탄광에서 문화를 생산하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베스터 가스공장이 친환경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문화공원이 되었고,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는 제빵공장이 미술관으로, 도축장은 문화예술센터로 바뀌었다.

오늘날 산업용 건물의 재활용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례는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이다. 2000년 10월에 문 연 이 미술관은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템스강변에 흉물로 방치된 화력발전소를 리노베이션했다. 옛 것과 새 것의 조화, 아름다움과 상징성 등에서 기존의 모든 사례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도시브랜드 가치 높이는 문화인프라

건축적 관점에서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공간으로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들 수 있다. 루브르박물관이 기존의 궁전을, 오르세미술관이 기차역을 개조한 것과는 달리 퐁피두센터는 1970년대를 풍미했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공장 건물 같기도 하고 추상적인 조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977년에 완성됐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현대미술의 메카로 우뚝 선 퐁피두센터는 오늘날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그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유럽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클래식 음악, 미술, 문학, 철학 등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선사해온 예술의 본향이다. 고색창연한 건물들은 비슷하면서도 나라마다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 단순히 패키지관광이 아니라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중심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예술애호가들이 늘고 있다.

유럽에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주요한 문화인프라로 인식한다.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문화관광 자원으로 경제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광양의 도립미술관도 이런 측면에서 지역성과 역사성을 살리면서도 획기적인 디자인 선택이 요구된다. 광양의 미래를 결정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정인서 광주문화도시계획 상임대표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