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탄생 100주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
  • 광양뉴스
  • 승인 2017.06.09 17:50
  • 호수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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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에서 윤동주 보다 뛰어난 문학인 나오길”

제10회 윤동주 백일장·사생대회 시상식… 백일장 대상 장지우(제철고 1), 사생대회 대상 박신희(용강중 3)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광양신문 주최 윤동주 백일장·사생대회 10주년 행사가 학생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지난 3일 청소년문화센터와 장미동산에서 열린 제10회 윤동주 백일장·사생대회 시상식이 지난 7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광양신문이 주최하고 광양시와 전남도교육청, 광양교육지원청, 한국문인협회 광양시지부, (사)한국미술협회 광양지부, 행복교육시민모임 등이 후원한 이번 대회에는 전남 지역 초중고생 600여명이 참가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백일장 부문 대상은 제철고 1학년 장지우 학생이, 사생 부문 대상은 용강중 3학년 박신희 학생이 각각 수상했다. 이 외에도 금상·은상·동상·장려상 등 총 66명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이번 대회는 특히 하동과 순천 지역 학생들이 수상하고 학교 밖 홈스쿨링 청소년도 입상해 다양한 수상자들을 배출했다.

정현복 시장, 송재천 의장, 나영숙 광양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이임순 문인협회 광양시지부장, 김애숙 미술협회 광양부지부장, 이재학 행복교육시민모임 대표, 김길성 광양신문 독자위원장, 김양환 광양신문 발행인등이 시상, 수상자들을 격려했다.

김양환 광양신문 발행인은“올해는 윤동주 시인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올해는 광양신문의 윤동주 백일장·사생대회도 10회를 맞이하는 뜻깊은 해”라며“10년 동안 꾸준히 참가해주신 학생들과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은 광양시를 비롯해 여러 기관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발행인은“윤동주 백일장 사생대회는 해를 거듭하며 명실상부한 전남 최고의 학생 문예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며“앞으로 전남도 뿐 아니라 하동, 남해 등에서도 많이 참여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더욱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현복 시장은“광양시도 윤동주 시인과 관련 기념사업을 여러 가지 하고 있다. 문학관을 설립하면 학생들의 작품도 전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시인을 사랑하는 모든 분의 마음을 모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통해 문화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송재천 의장은“윤동주 시인과 소중한 만남을 통해 청소년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창의력과 예술적 잠재능력을 일깨우길 바란다”며“우리 지역에서 윤동주 보다 더 뛰어난 문학인들이 많이 배출되도록 더욱더 글과 그림을 사랑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나영숙 광양교육지원청 교육과장은“윤동주 시인과 관련, 이렇게 뜻깊은 대회가 우리 지역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다”며“학생들이 일제 강점기에도 민족 의식에 바탕을 두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시인의 삶을 다시 한 번 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윤동주 백일장ㆍ사생대회’는 윤동주의 유고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時’를 보관하고 세상에 알린 정병욱 선생과 광양에 있는 그의 가옥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을 기념하고, 윤동주 시인과 광양의 인연을 알리고자 광양신문사와 광양시가 함께 개최하고 있다.   

사생대회 대상

박신희 광양용강중학교3학년

“큐레이터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

대상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처음 나간 사생대회에서 큰 상을 받아 무척 기쁘다.

이번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고 꿈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수학여행 가느라 시상식에 직접 가지 못해 안타깝지만 상을 받음으로 주변 어른들과 친구들로부터 꿈을 인정받고 응원을 받았다.

앞으로도 큐레이터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보다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백일장 대상

장지우 광양제철고등학교1학년

“앞으로 더 노력해서 더 좋은 작품을 쓰도록 노력하겠다.”

어렸을 때 부터 글 쓰는 것을 유난히 좋아해서 혼자 작품 노트를 만들어서 떠오르는 시상을 쓰거나 단편소설을 쓰는 것을 즐겨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에 오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두달 정도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윤동주 백일장이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그래서 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셨을 때 정말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왠지 이 상이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주신 상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에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겨있다. 사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려해서 할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다.  그리고 왜 할아버지께 먼저 다가가지 않았었는지 후회가 된다. 

그래서 내 글을 읽는 사람들, 그리고 이 인터뷰를 보게 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주위 사람들에게 미리미리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해주라’고…이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 더 노력해서 더 좋은 작품을 쓰도록 노력하겠다.

보리밭

‘찌르르…찌르르…쏴아- 쏴아-’할아버지 댁에서 사촌들과 함께 평상에 누워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항상 이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생각 해보면 그 평상은 참 작고 좁은 나무 평상이었음에 틀림없었으나 당시의 우리에게는 그 만큼 넓은 공간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라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피해 방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와 마루를 건너면 바로 평상이 보였던 탓에 그곳에서 부족한 잠을 취할 수 있었고, 낮에 밭 사이를 가로지르고, 들판의 허수아비와 놀면서 지친 몸을 잠깐 뉘이고 할머니의 정성 가득한 고구마며 감자, 옥수수 같은 간식들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또, 저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불판에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는 식당으로, 어른들이 술기운에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옛노래를 흥얼거릴 때에는 노래방으로 변하는 신기한 장소였으며 밤에 사촌들과 함께 누워 서로 할머니의 옆자리를 차지하겠다며 엎치락 뒤치락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평상에 누워 풀벌레 소리와 시원한 파도소리 같은 푸른 청보리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두 살 많은 사촌 오빠는 꼭 한마디 하고는 했다.

“아이 정말. 또 풀벌레 소리랑 풀 흔들리는 소리들려. 내가 저 소리 때문에 요즘 잠을 못잔다니까. 짜증나 !”이 말을 들으며 당시의 나는 오빠에게 물었었다.

“어째서? 나는 이 소리 좋던데. 예쁘잖아. 편안하고. 또….”

“이 소리가 좋다고? 역시 시골 사는 애 답다.”

자신이 서울에 산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던 당시의 오빠는 내 말을 끊으며 이렇게 말했었다.‘시골 사는 애’라는 말이 기분 나빠서 그 때 오빠와 엄청 싸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런 말도 내 청보리 흔들리는 소리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는 못하여 하루는 큰 결심을 하고 밤에 청보리 날리는 소리를 따라서 청보리 밭에 간 적이 있다. 푸른 청보리들이 흩날리고 있는 밭에 눈을 감고 서 있으니 마치 바다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더랬다. 이듬해에도 나는 청보리 소리를 따라 청보리 밭으로 갔다.

그런데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밤의 보리밭에는 이미 손님이 한명 와 있었다. 할아버지였다. 궂은 농사일로 인해 다 터져버린 손톱과 까만 얼굴과 몸, 풀물이 베어버려 초록빛으로 변한 손, 그리고 다 쉬어버린 목소리 때문에 나는 평소에 할아버지에게 잘 다가가지 않았었다. 그 때문에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돌아가려고 했었는데 할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셨다.

“지우야. 할아비가 갈테니 여기 있다 오려무나.”나는 이 말에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할아버지께 죄송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같이 있어요.”

할아버지와 같이 보리밭에 얼마쯤 서 있었을까.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말씀하셨다.

“나중에는 이곳에 그네를 하나 다는 것이 좋겠구나. 이 청보리 밭에서 그네를 달고 그걸 타면서 이 푸른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예쁘겠니?”

“그렇겠네요”나는 그 때 그네는 어떤 색이 좋을까. 어디쯤에 달까 하며 할아버지와 신나게 말을 했었다. 그리고 집에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돌아왔는데 그 길을 걸으며 할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래. 그네를 달고 청보리도 심고 그렇게 해서 우리 지우를 맞아주어야 하는데 요즘 할아버지가 많이 힘이 드는구나. 아직 우리 강아지들이랑 많이 못 놀아줬는데….”

“에이. 앞으로 많이 놀아주시면 되죠!!”

“그래. 그래야겠구나.”

그 날 이후 할아버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다음번에 할아버지 댁에 와서는 할아버지께 가장 먼저 달려가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해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고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라는 판단 때문에 할아버지께서 평생을 일구어 오신 밭과 추억이 곳곳에 묻어있는 옛 할아버지 댁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이상하게도 할아버지를 땅 속에 묻어드릴 때 청보리가 흔들리는 푸른 소리가 들렸다.

“쏴아-쏴아-”그리고 그 날 나는 아주 달콤한 꿈을 꾸었다. 청보리 밭에 있었던 아주 커다란 감나무 밑에 달린 흰색 그네에 내가 타서 있고 뒤에서 할아버지께서 밀어주고 계시는 그런 꿈을….

그 꿈 속에서 청보리 밭은 참 예쁘고 푸른 소리를 냈었다,“쏴아-쏴아- 찌르르…찌르르르”분명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이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 그 소리를 듣곤 한다.

“쏴아-쏴아-”하는 청보리밭의 청아하고 슬픈 그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