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 길을 걷다 <40>
연중기획 - 길을 걷다 <40>
  • 이성훈
  • 승인 2018.03.23 18:07
  • 호수 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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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목숨을 바칠 선비가 없어서야 되겠는가!’매천 선생의 발자취

조선의 마지막 선비, 봉강면 석사리 ‘황현 선생 생가·매천역사공원’

 

曾無支廈半椽功(증무지하반연공) 일찍이 나라 위한 공적 조금도 없으니

只是成仁不是忠(지시성인불시충) 다만 이 죽음 어진 마음이니 충성은 못 했지만

止竟僅能追尹穀(지경근능추윤곡) 끝맺음이 겨우 윤곡을 따르는 것뿐이니

當時愧不陳東(당시괴불섭진동) 당시에 진동을 따르지 못함이 부끄럽구나

 - <절명시> 중 제4수 -

 

매화마을을 시작으로 요즘 광양 곳곳에는 매화가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매화가 피는 시기에 생각나는 위인 한 분이 있다. 경술국치를 통분하며 자결한 애국 시인‘매천 황현’선생이다. 봉강면 석사리에 가면 매천 황현 선생의 발자취에 대해 알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매천 선생의 생가와 매천역사공원이다.

매천 황현 선생은 음력으로 1855년 12월 봉강면 서석촌에서 태어났다. 황희 정승을 비롯해 황진 장군, 황위 장군의 후손인 매천 선생은 따뜻한 감성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2500여수의 시를 남긴 탁월한 시인이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라 불리는 선생은 비판적 입장에서 자신이 사는 시대를 정확히 기록한 역사가, 위기의 시대에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지조높은 선비로 평가받고 있다.

차를 타고 광양고등학교를 지나 봉강면 석사리로 가다보면 매천 황현 선생의 생가와 역사공원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마을을 지나 깨끗이 포장된 길을 따라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가면 주차장이 하나 나오는데 주차장 바로 위가 매천 선생의 생가다.

선생이 태어난 마을 답게 골목길 곳곳에는 예쁜 매화와 선생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 정겨운 시골 풍경을 담은 벽화가 널려있다.

선생의 생가는 초가집이다. 생가 마루에는 선생의 초상화가 걸려 있으며 앞마당에는 우물과 목련, 장독대가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다.

마루에 걸려있는 선생의 모습은 왜소해 보이지만 검소하고 강직한 인품이 한눈에 느껴진다. 생가 주변에는 매화가 활짝 피어 있고 집 뒤뜰에 매천 선생이 어린 시절 공부하고 시를 썼을 작은 정자도 있다. 이곳에는 문화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친절히 안내해주고 있다.

이곳은 매천 황현 선생의 생가이기도 하지만‘서울 1964년 겨울’,‘무진기행’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승옥 선생이 태어난 곳이라고도 한다.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인들이 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사실. 보통 인연은 아니다.

매천 생가를 지나 표지판을 따라 450미터 정도 가면 매천역사공원이 있다. 생가에서 역사공원까지는 차로 가도 되지만 걸어가기 알맞은 거리여서 동네도 둘러보고 봄냄새도 맡아보고 산책하기에 좋다. 매천역사공원에는 황현 선생의 4대가 묻혀있는 묘소가 있다. 

선산 맨 위에 있는 무덤이 매천 할아버지의 묘소이고 그 묘소 아래 오른쪽의 묘소가 아버지 황시묵의 묘소이다. 왼쪽에‘애국지사 황현의 묘’라는 비석이 보이고 아버지 묘소에서 더 아래쪽 오른편의 묘소가 매천의 큰아들 황암현의 묘소다.

매천역사공원에는 선생의 묘소를 비롯해 사당과 정자, 산책로, 작은 연못, 주차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해를 마주보는 양지바른 곳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정자 앞 의자에 앉아 봄햇볕을 쐬기 안성맞춤이다.

공원에는 문병란 시인의‘매천송’(梅泉頌)을 새긴 비석이 있으며 선생의 생애가 담긴 돌판과 절명시 등이 담겨 있다. 1910년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자 같은해 음력 8월 7일 56세를 일기로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한 매천 선생.

절명시 속에는 지식인으로서 한일합방의 치욕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절명시를 통해 선비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한 통렬한 반성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생이 순국한지 어느덧 100년이 지났다. 절명시는 우국(憂國)의식이 짙은 시로 평가 받고 있는데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광양읍 우산공원에 가면 매천 황현 선생의 동상과 그 업적을 기린 비석도 함께 세워져 있다.

매화가 활짝 핀 따뜻한 봄. 매화만 감상하지 말고 매천역사공원과 생가, 광양읍 우산공원 등 매천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면 더욱더 의미있는 산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