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문화가 살아야 사회복지가 산다
기부문화가 살아야 사회복지가 산다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10:17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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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 광양자활후견기관장
몇 해 전 동문회에서 모 선배가 동문회의 발전기금으로 써 달라며 제법 큰 돈을 기부한 적이 있었다. 대처에 나가서 사업을 벌여 돈도 모았고, 처음으로 동문회가 구성된 후 처음 맞은 총동문회 자리인지라 동문의 발전과 또한 같은 동창회에 기금으로 써 달라며 나름으로 성금을 기부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선배는 그 일로 적잖이 마음고생을 하였고 결국 다음해 동창회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모처럼 기부한 성금을 두고 몇몇 인사들이 ‘제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이제 살만하나 보지?’라며 뒷소문을 냈던 게 결국은 ‘돈 내고 뭐 팔린다’는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필자의 지인 중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제법 자리를 잡고 사는 분이 있다. 우연히 한국에 나온 그 지인을 만나 사회복지문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데 그때 그분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는데 텍사스 주지사와 나란히 찍은 사진이었다. 이민 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난후 거리를 배회하는 노인들에게 몇 차례 빵을 나눠준 일이 있었는데 이 작은 선행이 마을 라디오 방송을 타게 되었고 이후 마을 공식행사 때마다 초청되어 그 작은 선행을 인정받게 되었고 주지사가 마을을 공식 방문했을 때 맨 앞자리에 초청되어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공식행사 때에는 이렇듯 남을 위해 선행을 베푼 사람을 반드시 초청하여 가장 앞자리에 앉히고 그 선행을 사회적으로 인정해 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예, 아니 지역의 예를 보자. 자치단체의 크고 작은 행사 때 과연 앞자리는 누구 자리인가를 상기해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모든 행사의 앞자리는 당연히 지위가 높으신 분들의 차지이고 행사를 진행하는 담당자는 의전 중 가장 큰 비중을 단상의 자리배치에 두고 혹여 이를 잘 못 배치하면 행사 전체를 망쳤다는 욕을 먹는 게 현실이다.

물론 남을 위해 베푸는 사람들의 선행이 그 공치사를 받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라 하지만 혹여 나누고 베푸는 아름다움의 미덕을 도리어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순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회복지가 정착된 나라에서는 나눔의 실천인 기부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다. 사회복지 실현에서 가장 큰 자원의 한계를 기부문화를 통해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복지가 잘 발달된 나라는 정부차원에서 추구하고 있는 공적 영역의 사회복지뿐만 아니라 민간 주도의 사회복지가 활성화되어있는 나라라고 하겠고 이들 나라의 공통된 사회질서 중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기부행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기부행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없다면 자원이 한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복지는 그만큼 설 땅이 줄어드는 셈이고 결국 1차 사회안전망이라는 국가 사회복지 시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것을 누군가에게 나누고 베푸는 마음에 차이가 있을 수는 없지만 굳이 순위를 매겨본다면 가장 작은 봉사는 물질(돈)을 나누는 것이고 다음은 몸으로 봉사하는 것이고 다음이 신체기증, 그리고 가장 큰 나눔의 행위로 사체기증을 들고 있다.

그리고 사회복지활동 참여인구 비율을 그 나라의 사회복지 척도로 삼는 나라도 있다. 무덤에서 요람까지라는 말로 대변되는 스위스의 경우 사회복지 참여인구수가 그 나라의 인구수 보다 많은데, 이는 많은 사람들이 몇 개의 사회복지 단체에서 활동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60년대 이후, 오로지 개발과 발전, 그리고 산업화라는 개발 드라이브제 이후 우리나라는 90년대에 들어서 비로소 민간 위주의 사회복지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완전한 복지국가 실현, 더불어 함께하는 사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필수 요소인 기부문화의 정착 없이는 한계성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따라서 기부문화의 정착이야 말로 사회복지실천의 가장 중심에 서 있다고 할 것이다.

기부 문화가 살아야 사회복지가 산다.
 

입력 : 2005년 06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