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 길을 걷다<43>
연중기획 - 길을 걷다<43>
  • 이성훈
  • 승인 2018.04.27 18:10
  • 호수 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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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김·용지 큰줄다리기…’ 골목길 벽화에 담은 이야기

골목길 추억 살아있는‘태인동 용지마을’벽화길

 

태인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광양제철소, 국가산단, 대형 화물차, 굴뚝 등 회색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내면을 바라보면 아기자기한 구석도 많은 곳이 태인동이다. 세계 최초 김 양식지부터 전우치, 배알도 수변공원, 용지 큰줄다리기 등 많다.

1640년 김여익이 입도(入島)해 김을 발견하고 김 양식 법을 개발한 것을 넘어‘김’이라는 이름도 김여익의 성을 따서 지었다고 하니 그 기발한 발상이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씩 태인동 출신 사람들에게 김과 관련된 추억담을 듣는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손발이 꽁꽁 언 채 김을 캐내고 말려 겨울방학이 유난히 길었다는 이야기, 김으로 떼돈을 벌었다는 이야기, 고생에 비해 예전이나 지금이나 김 값이 비슷하다는 푸념, 광양제철소와 국가산단이 들어서면서 사라져버린 김 양식에 대한 추억들을 듣다보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밥 한 숟가락에 얹은 김 한 장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에 놀랄 뿐이다.

태인동 중심부에는 용지마을이 있다. 용지마을회관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을 한 바퀴를 돌면 예전과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용지마을 골목길 곳곳에 벽화가 그려있어 화사함을 더한 것이다.

최근 태인동이 환경개선 사업 중 하나로 용지마을 환경개선 사업을 완료했는데 마을 외벽을 고압청소기로 말끔히 씻어내고 곳곳에 벽화를 조성한 것이다.

이화엽 태인동장은“지난 3월부터 용지마을 내 용지1길 26 일원에 깨끗해진 외벽에 역사와 전통을 담은‘용지 전래 벽화 거리’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약 500m의 용지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는 △김의 향연 △전우치의 나들이 △농악단의 열연 △용과 큰 줄 등 총 7가지의 테마로 세계 최초로 김 양식이 이뤄진 이야기와 궁기마을의 전우치 설화, 용지큰줄다리기 등 태인동만의 역사와 전통이 담겨있다.

용지마을을 구석구석 다녀보니 벽화보다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골목길이 더 눈에 들어온다. 용지마을 주차장 바로 뒤 언덕에는 온갖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골목길 형태도 제각각이다.

사람 한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도 있고 숨이 가쁠 정도로 경사진 계단길도 있다. 담벼락 곳곳 경사진 곳을 활용해 텃밭을 조성해놓은 골목길도 있고 파란 하늘이 보이는 골목길도 있다. 이리저리 돌아보는 골목길 탐험이 지루하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다양하기 때문이다. 

용지마을 골목길 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어떤 이는 오밤중에 귀신이 나올까봐 후다닥 뛰어갔을 것이다. 어떤 이는 술에 많이 취해 골목길에서 넘어졌을 것이다. 어떤 이는 급한 나머지 골목길 담벼락 모퉁이에 몰래 실례를 해놓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골목길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술래놀이를 했을 것이고 한겨울에 행여 이웃들이 넘어질까 봐 얼음길에 연탄재를 뿌린 주민들도 있을 것이다. 집 담벼락 사이로 김치도 오갔을 것이고 옆집 싸우는 소리와 개짖는 소리에 잠을 설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골목길 끝을 지나 용지마을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본다. 언덕 왼쪽에는 공장들이 힘차게 가동되는 소리가 들리고 언덕 오른쪽에는 굽이굽이 태인동 언덕 마을이 훤히 보인다.

바로 아래는 굽이굽이 이어진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슬레이트 지붕들이 모여 있다. 소박하고 옛 것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용지마을을 걸어보니 어릴 적 골목길에서 뛰어놀던 추억이 그리워진다.  

골목길 벽화는 전국적인 추세다. 우리지역에도 벽화를 그린 마을이 꽤 있다. 삭막하고 낡은 골목길에 벽화를 그려 생기를 불어넣어 유명해진 곳이 전국적으로 많다. 아니,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요즘에는 관광객이 오지 못하도록 하소연하는 마을도 많다. 태인동 용지마을 벽화가 앞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조성되기보다는 마을 주민들이 벽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로 추억을 많이 남겨갔으면 좋겠다.

태인동은 올해‘회색빛 태인동을 밝고 화사하게’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외벽청소·벽화조성 사업, 민관 합동 클린데이 등 환경개선 사업을 추진할 예정인데 이야기를 담은 벽화가 늘어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