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당했다’주장하면서도, 당당하게 말 못하는 하도급사‘비애’
‘갑질 당했다’주장하면서도, 당당하게 말 못하는 하도급사‘비애’
  • 김영신 기자
  • 승인 2018.07.13 18:58
  • 호수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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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한 소방업체가 대기업으로부터 일방적인 계약변경으로 인한 공사비 차액 4억여원을 못받아서 억울하다며 공정위에 제소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에 들어갔다. 해당업체를 찾아가 대표를 만나 정황을 듣고 필요한 자료를 받아와서 새벽 3시까지 훑어봤다.

대기업들의 하도급사 갑질 사례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지역소방업체가 P사의 공사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P사의 태도가 하도급사를 향한 갑질이 확실한지 팩트를 체크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료와 소방업체의 주장을 토대로 내린 결론은‘갑질’이 분명했고 다음날 기사 초안을 썼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의 주장에 의지하거나 기자의 판단이 주는‘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현장공사감독과 정산 관계자 등 P사측과 연결을 수차례 시도했으나 받지 않거나 통화가 됐어도 다시 연락을 준다는 말만 남겼을 뿐 연락이 오지 않았다.

P사 관계자들은‘침묵’으로 일관했고 P사는 언론에도 갑질을 하는 대단한 회사인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불쾌했다. 어쨌든 연락이 오지 않아 P사의 입장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내용을 다시 넣고 기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번엔‘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소방업체가 문제였다. 소방업체 대표는 기사초안을 써놨을 때도 문제를 중재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며 보도를 미뤄주면 어떻겠느냐고 했고, 기사를 보완해서 마무리했을 즈음 다시 전화를 걸어와서 중재자가 또 나타났으니 한 번 더 미뤄달라고 했다.

갑질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도‘뒤탈’을 염려하는 것인지 전전긍긍 보도가 되는 것을 꺼려하는 모양새였다. 순간 이 소방업체가‘언론이 취재 중이니 적당히 해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식으로 P사에 흘려 언론을 이용하려 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자‘헐…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그동안 이 기사를 위해 들인 공이 아까웠고 언론이 이용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설을 세우자 숨고르기가 되지 않았다.

소방업체 대표에게 말했다.“물론 제보자를 보호해 줄 필요는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공정성을 깨뜨리는 그런 사안이므로 이 기사는 사장 시킬 수 없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부당함을 알릴 그럴 용기도 없었으면서 애초에 왜 제보를 했느냐? 라고도 쏘아 붙였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전전긍긍 벙어리냉가슴 앓듯 살아 온 삼십여년 하도급사의 비애를 안고도 직원과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대표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읽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역 소방업체와 P사간 갑질 논란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어 보인다.

전기전문회사인 P사는 토목건축공사면허를 취득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난해 100억원에 못미치는 공사를 수행했다. 대한건설협회가 1년에 한번 실시하는 건설사시공능력평가에서 지난해 92억여원으로 평가됐었으나 발주회사인 포스코는 수백억원대의 공사를 P사에 발주해 애당초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P사의 이번 공사수주가 대기업들이 자행하는 구조적 폭력‘불공정거래행위’인지를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밝힐 일이다.

언론을 이용하려 했든 그렇지 않았든 오락가락하는 소방업체의 태도에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30여년 소방설비공사를 해오면서‘당했던’대기업의 갑질을 알리고자 했던‘용기’에 박수라도 보내줘야 하는 것인지 기자도‘전전긍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