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크기
사랑의 크기
  • 광양뉴스
  • 승인 2018.07.27 19:47
  • 호수 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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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경 한국문인협회 광양시지부장
유미경 한국문인협회 광양시지부장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여름 창가로 친구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어느 날 문득 남편에게 물었어. 당신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어요?  그래놓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어. 과연 난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그럼 그 사랑의 크기는 얼마쯤 될까.’

사랑의 크기? 나 자신에게 되물어본다. 사랑에도 크기가 있을까. 그것은 무엇으로 잴 수 있을까.

친구의 편지는 연일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을 물러가게 할 만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태하고 안일해져만 가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사랑의 크기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더듬어가게 했다.

모든 사물과 마찬가지로 사랑에도 당연히 크기가 있을 것이다. 컵 모양에 따라 그 속에 담겨진 물의 모양이 달라지고, 어떤 것을 담느냐에 따라 컵 색깔이 변하는 것처럼 사랑도 분명 그런 크기와 색깔과 형태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지내기 때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럼 그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어 준다. 슬프고 힘들어도 내일에 대한 희망과 사랑이 있으면 충분히 참을 수 있다. 절망에 빠지더라도 자신을 지켜 봐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있으면 쓰러질 수가 없다.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따뜻한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용서가 된다. 그로인해 그 사람의 마음도 녹아들어 또 다른 사랑을 꽃피우게 만든다.

사랑이 없다면 세상을 살아갈 의미가 없어지고 가치도 사라지게 된다. 그런 사랑은 갈고 닦아야 빛이 나며 보는 대로 나눠주어야 한다. 뿌리를 내릴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사랑이라는 씨앗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넘쳐나는 사랑을 가지고 있다 해도 가슴 속에 꼭꼭 넣어만 두고 꺼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쓸모없는 것이 된다. 나눠주고 또 나눠주어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것이 사랑이라는 마술의 샘이다.

고린도전서 13장에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것을 보면 사랑이라는 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크기 또한 잴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뎌내는 사랑의 크기는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마음의 크기와 모양과 빛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순수해지지만 한없이 이기적으로도 변하기도 한다. 혹여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생길까봐 꺼내 보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한다. 화수분 같은 사랑의 마음에 제어장치를 걸어버리는 것이다. 그로 인해 따뜻한 눈빛 한 줌 기대했던 사람들은 상처입고 돌아서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나 또한 제외될 수 없다.

오랫동안 사람 만나는 일을 하면서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내게는 많았다.

그들을 만나 취재하고 글을 쓰면서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들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면서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과 번민을 반복하면서도 정작 껴안는 데는 인색했던 것이다.

두려웠다. 받아들이고 나서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감정과 이성의 갈림길에서 늘 이성이 지고 말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핑계일 뿐이다. 어떠한 상황이든 마음만 있으면 다 껴안을 수 있고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내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온전한 사랑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데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고 부족했던 것이다. 그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어 부끄럽기 그지없다.

사방 고요한 새벽에 혼자 깨어, 친구의 편지를 조심스레 펼쳐본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내 마음의 크기는 얼마만큼 될까.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랑의 크기는 또 어떤 모양과 빛깔을 가지고 있을까.

난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돈에 대한 걱정도 없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해놓은 것도 아닌데 그리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막연히,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 아이들의 미래가 평탄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이들을 챙기는 데는 서툴다. 그냥 걱정하며 지켜볼 뿐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현재 나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내게 주어진 짐들이 너무 벅차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다.

눈물이 나도록 고통스럽고 힘이 들어 도망쳐버리고 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날은 나 자신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주위를 망각한 채 지내기도 한다. 눈을 뜨고 있지만 눈동자가 보고 있는 곳은 아득한 우주의 너머의 별이다. 현실을 버거워하는 영혼은 가끔씩 몸뚱아리를 이탈하기도 한다.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어도 사라진 영혼은 쉽사리 제자리로 돌아와 주지 않는다. 그런 날이 오래될수록 나의 존재는 점점 빛을 잃어가게 된다.

그 모든 것이 내 사랑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자기애에 갇혀 남을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과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나를 가둬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 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밝고 편안한 곳으로 나오고 싶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뒤섞여 행복하게 웃고 싶다.‘나’가 아닌‘우리’속에 나를 세워두고 싶다.

사랑의 크기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느끼고 깨달으며 마음으로 가늠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크기와 모양과 빛깔로 빚어내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해 준 친구에게 가장 먼저, 물빛 안개 같이 수줍은 내 사랑의 크기를 조심스레 열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