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광양>광양향교 역사와 전통을 따라서
<신바람 광양>광양향교 역사와 전통을 따라서
  • 광양뉴스
  • 승인 2018.10.26 15:26
  • 호수 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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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젊은 층 위한 예절반, 도서관 운영 계획도

광양향교는 광양시 광양읍 향교길 37에 위치해 있다. 광양향교의 건립은 1443년(세종 25년)에 창건 되었으며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양하고 지방민에게 학문을 교화시킨 교육기관이다.

정유외란 때(1597~1598년)현감으로 부임한 이오가 대성전을 건립하였고, 현감이 있던 동현에는 아사(衙舍)를 지었다. 그리고 1658년에는 경내에 대부분의 건물이 건립 되었으며 이 건물들은 세월에 따라 노후화됨으로 여러 번의 보수와 증수를 거쳤다. 그런 후 영조 41년(1817)에 대성전을 중건하였고, 1966년 풍화루(風化樓)는 석주(石柱 : 돌기둥)로 대체하여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5년 2월 2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 받은 지방문화재이다.

향교는 후세(後世)를 위한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출발했다. 우리의 역사도 교육을 중시 했고 그 기관을 고구려 때는 태학(太學), 고려 때는 국자감(國子監), 신라 때는 국학, 백제는 오경박사제도가 있었다. 향교는 태조 13년(930) 평양에 학교를 지방에는 향교를 건립토록 했다고 한다.

향교의 설립 목적은 교육의 시행 인제육성 . 제례봉향(制禮奉香). 문화융성(文化)隆盛)을 기본으로 하여 공교육의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자격요건을 갖춘 학동(學童)을 향교에 입교, 학문에 정진시켜 향시(鄕試)인 생원 . 진사시에 합격시켜 중앙의 성균관에 입교, 과거(科擧)에 응시토록 했다. 교육은 학문의 연마는 물론 인성교육과 충 . 효를 숭앙(崇仰)하는 정신문화를 배양시켰다.

제례봉향은 공자님의 석존대제와 각종 석채례(釋菜禮)를 보양하는 절차를 학습하여 시행케 하였고. 가정에서는 사대봉사를 시행토록 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매년 2회(봄 .가을) 석존대체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향교의 구성과 조직을 보면 구성은 대성전을 비롯한 각종 건물이 10여동(유림회관 포함) 건립되어 있다. 그리고 인적 자원의 조직으로는 교장 역으로 도유사(都有司)와 교임(校任). 교노(校奴)가 있었다. 도유사는 1인이었고 교임은 4인(재산관리인 2명과 교육담당 2명)이 있었고, 학생은 30명이며 교노비는 25인 이었으니 합이 61인이 있었다. 이로 인해 건물의 관리와 보수는 물론 인적인 관리에 소요되는 재물이 막중하였다. 이러한 경비를 지방관이 부담하기는 너무 크니 태종(太宗) 13년(1413)에 각 향교에 전답(현에는 5결)과 서책(書冊) 및 노비(奴婢)를 하사 하여 운영토록 했다.

광양향교는 유림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한시 반(한시작법, 주역풀이), 사임당 반(서예), 국악반(판소리, 민요), 생원 반(명심보감 해설), 진사 반(대학 해설) 등 다섯 과목이 있다. 내년에는 학생들과 젊은 층 위주로 예절 반을 신설할 예정이며, 도서관도 만들 계획이다.

백서이 어르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