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칼럼-유언비어(流言蜚語): 근거 없이 흐르는 해충 같은 말
고전칼럼-유언비어(流言蜚語): 근거 없이 흐르는 해충 같은 말
  • 광양뉴스
  • 승인 2018.12.14 19:33
  • 호수 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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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한나라 경제 때 두영(竇瓔)은 태후의 조카이자 대장군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 당대 실력자로서, 크고 작은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위기후의 관작까지 부여받아 조정대신들은 그에게 아첨하며 굽신 거렸다.
이 무렵 전분(田粉)은 출신성분도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미관말직에 불과 했는데, 두영의 집에 들락거리며 아첨을 일삼던 사람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러나 미모의 누이(어머니는 같고 아버지는 다른 동생)가 황후로 발탁되는 바람에 벼락출세를 하여 태중대부라는 높은 벼슬을 하게 된다.
그 때 경제가 죽고 무제가 즉위한 후에는 무안후에 봉해져 그 권세는 오히려 두영을 능가하였다. 따라서 전에 두영에게 아부하던 고관대작 들이 이제는 전분에게 달라붙어 갖은 아첨을 떨었다.
두영은 그런 꼴들을 보고 어이가 없어 “이런 몹쓸 인간들”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강직하기로 소문난 장군 관부(灌夫)는 그런 꼴불견들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두영에게 예전과 전혀 다름이 없이 지내며 술잔을 나눌 때 마다 소인배들의 저급한 행동을 한탄하기도 했다.
어느 날 전분이 연(燕)나라 왕 유가(劉嘉)의 딸을 첩실로 들이게 되어 그의 집에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두영과 관부 역시 예의상 참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자리에서 불상사가 일어났다.
전분이 건배제의를 하자 모두들 잔을 들고‘건배’하면서 소리를 치는데, 곧 이어서 두영이 건배제의를 하자 참석자 모두가 엎드려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놈들 어디 두고 보자!’심사가 꼬여있던 관부는 이 상황에서 잔을 들고 전분 앞으로가서 직접 전분에게 건배 제의를 했다.
전분은 무시하는 투로 방금 마셨으니 좀 있다 먹겠다고 거절을 했다. 이번에는 전분의 측근인 관현에게도 건배를 제의했으나, 못들은 척하며 옆 사람과 대화만하고 있었다.
드디어 화를 다스리지 못한 관부는 술잔을 내동댕이치며 큰소리로 외쳤다. “어찌 인간들이 이렇게 무례할 수 있단 말인가!”잔치분위기는 아수라장이 되고 모였던 사람들은 끼어들기 싫다는 표정으로 슬금슬금 빠져 나간다.
두영도 화는 났으나 꾹 참고 관부를 달래어 돌아가도록 권유했다. 분노한 전분 은 잔칫집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든 관부를 이 불경죄로 투옥해버렸다.
두영은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관부는 나라에 큰일을 한 장군이며 무안후의 집에서의 소란은 예도에 어긋난 사람의 잘못이지 관부의 잘못이 아닌데도 무안후는 개인감정으로 관부를 투옥 한 것 입니다.’ 
이 일에 관하여 어정쩡하게 넘어간 무제에게 태후가“가당찮은 놈들이 이 어미와 내 집을 욕보이려 하는데 성상께서는 어찌 그리 우유부단하게 일을 처리하시오!”무제는 하는 수 없이 두영을 주군 기망죄로 투옥해 버렸다.
자기편이 되었던 관부의 가족들 모두가 처형당하자 두영은 더욱 겁을 먹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데 어느 날 옥리가 고맙게도 귀띔을 해준다.“내년 여름이 되면 특별 사면이 있다고 합니다. 힘들지만 그때까지만 참고 견디면 풀려 날수 있습니다”그말을 듣고 두영은 한줄기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 무렵 장안성에 근거 없는 해충 같은(流言蜚語) 뜬소문이 떠돌았다.“두영은 옥중에서도 반성은 커녕 천자를 헐뜯는 소리만 일삼고 있다고 한다”이것은 물론 전분 일당이 꾸며낸 이야기이다.
이 터무니없는 소문이 두영의 귀에 들어가자“아! 내 운명은 이대로 끝이 나는구나”물론 무제의 귀에도 들어갔다. 무제는 전후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두영을 사형에 처하게 된다.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지 않고 모함으로 인해 훌륭한 장수가 죄도 없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최고 책임자가 전후 사정을 알아보지 않은 것이 잘못이지만, 유언비어는 이렇게 뼈아픈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