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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19.01.11 18:03
  • 호수 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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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북구 (재)나주시 천연염색문화재단 운영국장

광양 제피 문화

 

광양에서 제피로 불리는 것은 초피나무(Zanthoxylum piperitum) 열매 껍질을 일컫는다. 초피나무 자체를 제피나무로 부르기도 하며, 젠피, 지피, 젬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제피는 광양을 비롯해서 주로 가야 문화권에서 사용되어 온 향신료이다. 가야 문화권에서는 주로 미꾸라지의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추어탕 등의 조리에 사용되고 있다.

광양에서는 김치, 매운탕, 조미료 등에 첨가하고, 어린잎을 무쳐서 먹는 등 타지역보다 폭넓게 사용되어 왔다. 용도가 많다 보니 광양에서는 밭 귀퉁이에 초피나무 한 두 그루를 심어 놓은 곳들을 흔히 볼 수가 있다.

초피나무의 이용문화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초피나무를 산초(山椒)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생강(薑)으로도 불리며, 향신료와 약용으로 이용해 왔다. 그러한 전통 때문에 영어 이름은 일본 후추라는 뜻의 Japanese pepper이다. 일본에서 초피나무 새싹은 구이, 조림 등의 요리에 이용되어 왔다.

된장으로 버무린 요리, 두부, 산적, 새싹무침, 새싹조림에도 이용되며, 특히 죽순요리와 궁합이 좋아 많이 이용된다.

꽃과 미숙 열매는 조림이나 담금주에도 이용되며, 익은 열매의 가루는 장어요리, 과자류, 찹쌀떡, 스낵 등에도 이용된다.

제피가 많이 이용되다 보니 초피나무의 재배면적도 많고 가시 없는 품종, 열매가 큰 품종 등 몇 가지가 개발되어 있다.

현재 일본에서 소비되는 제피는 와카야마(和歌山)현에서 80% 정도 생산되는데, 특히, 아리다가와(有田川) 지역에서 재배되는 열매가 굵은‘포도 제피(일본에서는 포도산초라고 한다)’가 유명하다.

제피는 중국 사천요리에서 조림 요리, 볶음, 마파두부 등의 맛을 내는데 사용된다. 제피의 건조 분말을 요리의 마무리에 추가하면 사천요리의 특징 중의 하나인 혀가 저린듯 한 독특한 맛이 된다.

제피(초피나무 열매)는 타이완의 원주민 요리에도 사용된다. 3년 전쯤 타이완의 고산족 원주민 행사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해발 2000m 이상의 고지에서 행사가 끝나고 원주민들은 몇몇의 특별 초대 손님에게 토종 돼지 바비큐 요리를 대접했다. 요리를 내오기 전에 자신들의 전통음식이라며, 특별한 향신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입맛에 맞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향신료라는 것이 광양에서 제피로 불리는 제피였다.

어렸을 때부터 제피음식 문화에 익숙한 탓에 거부감 없이 돼지 바비큐를 먹었을 뿐만 아니라 음식문화에 대한 동질감까지 느껴지며, 그들과의 대화 폭이 넓어졌다.

제피문화는 이처럼 일본, 중국 및 타이완에서도 이용문화가 있다. 일본에서는 초피나무의 품종개발, 재배면적확대, 제피를 이용한 상품 개발 등 적극적으로 소득 작목 육성과 함께 산지를 특성화하고 있다.

반면에 광양에서 제피 이용 문화는 점차 소실되고 있다. 아이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싫어하기 때문에, 외지인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등으로 음식에 제피를 사용하는 가정이 줄어들고 있다.

음식점에서는 아예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고, 이로 인해 광양음식의 특색도 사라지고 있다.

이와 같은 수동적인 대응에 의해 광양음식의 특색이 사라지면 차별성이 없기 때문에 굳이 광양에서 먹어야될 이유도 사라진다. 그런 측면에서 광양 제피문화의 복원은 광양문화의 특색이라는 점 외에 요식업과 농가의 소득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젊은 세대가, 소비자들이 싫어하는데도 광양음식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억지로 사용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제피 소스가 사용된 광양불고기의 맛이 궁금해서 먹어 보고 싶은 사람, 제피가 사용된 광양 음식의 매니아층도 존재한다.

식단의 구색과 특색이라는 측면에서 우선 이들 매니아 층을 위한 음식이라도 능동적으로 제공되었으면 한다. 그러면서 이것들이 확대되고 대중화가 될 수 있도록 조리법의 연구와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차원에서 제피 문화에 대한 논의와 함께 각계각층에서 이를 확대 및 특색화 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