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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19.02.22 17:32
  • 호수 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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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북구 (재)나주시 천연염색문화재단 운영국장

이경모 사진 아카이브와 함께 서둘러야 할 것들

 

지난해 tvN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미스터 션샤인>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시나리오를 쓴 김은숙 작가는 매체에서“이름 모를 의병들의 사진을 보고, 이 사람들이야 말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서 이 사람들을 보고 의병 소재 드라마를 쓰게 됐다”고 밝혔다. 그 사진은 1907년 영국 데일리 메일 종군기자 프레데릭 아서 매켄지(Frederick Arthur McKenzie, 1869-1931)가 촬영한 정미의병 사진이다.

매켄지는 1904년에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대한제국에 왔으며, 1905년에 영국으로 귀국했다가 1906년에 다시 대한제국으로 와서 취재를 하였다. 그는 취재한 것을 모아 1908년에 <대한제국의 비극(The Tragedy Korea)>를 출간했다. 이 책에는 의병들의 사진뿐만 아니라 10살 된 딸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하자 그 옆에서 울부짖는 어머니 등 일본군의 만행이 담겨져 있다. 매켄지의 사진이 없었다면 의병들의 활동과 일본군의 만행은 세세하게 전해지지 않거나 전해져도 사실성의 증명이 부족했을 것이다. 어쩌면 <미스터 션샤인>도 탄생하지 못 했을 것이다.

매켄지라는 외국인이 대한제국 시대의 비극을 사진으로 남긴 것처럼 1948년 10월 발생한 여순사건 등 대한민국 격동기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광양출신의 이경모(1926-2001) 선생이다. 이경모 선생은 한국 다큐사진의 지평을 연 작가로 평가된다. 1945년 8월에 노산 이은상도 참석한 광양경찰서에서 열린 시국수습군민회의 장면은 한국 현대 사진의 효시로 평가된다. 선생은 1948년 10월 발생한 여순사건, 6.25 한국전쟁에서 목숨 걸고 종군 취재를 하였다.

선생은 수 만장의 사진을 남겼고, 광양시가 유족들로부터 유작을 기증받아 이경모 사진 아카이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카이브 사업이 구축이 되면 이것이 뿌리가 되어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경모 선생의 사진은 대한제국 시대의 사진과는 다르고, 광양에 대한 자료가 많다는 점에서 아카이브 사업으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선생의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생존해 계신 분들이 있다. 사진속의 장면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 계신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그 시대의 아픔, 슬픔, 분노를 간직하고 있는 분들이 마을마다 생존해 계신다. 그 이야기가 묻혀 버리고 사진만 남는다면 목숨 걸었던 선생의 사진 가치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 <미스터 션샤인>의 시나리오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과는 달리 이경모 선생의 사진에는 증언자가 많고, 수많은 콘텐츠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압축된 유형의 사진에 대한 아카이브 구축과 함께 그 사진 유형별로 관련 사실들에 대해 무형 자산인 어르신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채록하고, 정리하는 작업들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수년전‘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에서 이경모 선생이 찍은 회갑잔치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에 나타난 상, 과일, 상차림, 복식 등은 귀중한 연구 자료이자 특산물 개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자원이었다. 그러므로 이경모 선생의 사진에 대해 시대 순으로 뿐만 아니라 보도부문, 농업, 예술, 관광 등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하고, 유형별로 해당되는 어르신들의 기억도 함께 기록화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다음 이것을 광양의 전통 계승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하게 접근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이경모 선생의 사진 가치가 극대화 될 뿐만 아니라‘콘텐츠의 보고(寶庫)’광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