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에세이] 길을 잃고서야, 길을 보았습니다
[독자 에세이] 길을 잃고서야, 길을 보았습니다
  • 광양뉴스
  • 승인 2019.06.2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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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규 시인

길을 잃고서야 길을 보았습니다.

 

길을 잃고서야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길을 잃고서야

바람을 보았습니다.

길을 잃고서야

길을 보았습니다.

 

수십 년 전의 기억이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고 처음 치른 시험,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미술 시험에 놀라운 문제가 출제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 있는 세면대의 수도꼭지는 몇 개인가? 학교 뒷산 정상의 바위는 어떤 모양인가?”

아! 멘탈 붕괴다.‘깜짝’을 넘어‘끔찍’이다.

맞혔을까? 다행히 객관식이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연필을 굴렸다.

미술문제에 수도꼭지 개수가 나오다니, 책 만 죽어라 보고 시험공부를 한 나는 당황스러움에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미술 선생님은 왜 책에서 문제를 출제하지 않으시고, 피곤하게 책 밖 주변 사물과 자연환경에서 문제를 냈을까?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시험이 끝나고 문제풀이 시간에 선생님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주위에 있는 사물을 정확히 보지 못하면서 무슨 공부를 한 단 말이냐!”며 일침을 가하셨다.

‘우물 안 개구리가 어찌 강이 넓고 깊음을 알 것이요? 한 철 사는 여름 벌레가 어찌 추운 겨울의 칼 바람을 알겠는가?’

우물 안 개구리에게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보여준 미술 선생님의 놀라운 예지력이 새삼 경이롭다.

미술 선생님이 원하신 것은 관찰력이었다. 그 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 행사를 하는 곳이나 낯선 장소에 가면 어김없이 주변 지형지물부터 세심히 탐색한다. 계단, 엘리베이터, 화장실, 쓰레기통 등은 어디에 있는지?

또, 출입구는 어디에 몇 개가 있는지? 이벤트 행사를 하는 곳에 가면 의자나 탁자 개수 세는 것은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다.

사회자가 혹시 깜짝 문제로 의자 개수 물어봐서 선물을 주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말이다. 눈과 신경 세포는 피곤하지만 만약에 있을지 모를 행운의 기회를 쉽게 날리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여전히 속도 앞에서만은 질주본능이 부활 한 건지 쉽지가 않다.

아마도 이동 수단이 개인 승용차가 되면 서부터 주변에 관심을 갖지 못한 것이 더 심해졌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나오면 바람의 속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쏜살같이 차를 찾아 질주하고, 시동을 켜자마자 앞으로 앞으로 발진이다. 그러니 주변에 뭐가 있는지 세세하게 볼래야 볼 틈이 없다.

어쩌다 휴일에 느긋하게 뒷짐 지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면,‘어! 여기 이것도 있었네. 언제부터 있었지’할 정도로 무척이나 무심하게 살고 있다.

천천히 길을 걷다 보면 시야가 넓어져서 스치고 지나갈 사물들도 눈에 들어온다.

반대로 시간에 쫓기어 달려가다 보면 옆은 고사하고 앞 도 잘 안 보인다. 앞에 돌부리가 있는지 주변에서 무슨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지 전혀 알 수 가 없다.

발걸음을 여유롭게 걷고, 아예 걸음을 멈추면 보이지 않았던 길이 자세하게 잘 보일 텐 데, 왜 속도의 신 앞에서만은 질주할까!

꼭 길을 잃어봐야 정신을 차릴 건가!

숨 막히게 돌아가는 세상의 시계 속에서 일부러 라도 길을 잃어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