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것은 반드시 쓰는 신문
쓸것은 반드시 쓰는 신문
  • 한관호
  • 승인 2008.11.06 09:47
  • 호수 2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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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연, 지연, 학연, 한국을 대표하는 코드중의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사람 행세를 하려면 특히 정치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세 가지 연줄을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이런 현상은 조선시대 당파 싸움은 두고라도 최근 국정에서도 나타났는데 참여정부 시절, 코드인사 논란이 그것이다. 헌데 정작 코드인사를 그렇게 비난했던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고소영 내각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삼연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이런 한국 문화를 대변하는 정서가 담긴 속담이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일에 있어 실력이나 자격 여부를 떠나 성씨, 출신 지역, 출신 학교 등이 연관 있으면 인센티브를 얻는 현실이다.

광양처럼 인구가 많은 도시 특히 토착민 보다 외지 출신이 많은 지역에서는 이런 문화가 덜하다. 그러나 인구 10만이 채 안 되는 지역에서는 혈연, 학연, 지연이 갖는 집단문화 위세가 대단하다.
필자의 고향 남해는 특히나 이런 문화가 심각하다. 섬인 남해는 남해대교와 창선연륙교가 놓이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육지와의 왕래가 자유롭다. 그러나 그 이전, 육지와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섬이라는 문화적 특수성으로 하여 아마도 무엇엔가 소속돼 외로움, 소외감 따위에서 벗어나려는 정서가 이런 패거리 문화를 발전시킨 게 아닌가 싶다.

남해신문사 신입기자 시절 취재원을 만나 인사를 나누면 영락없이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부터 나온다. 그리고 무엇인가 자신과의 연결 고리를 찾으려는 이런 저런 질문이 이어진다. 재미있는 건 정중하게 대하다가도 기자가 학교 후배라도 될라치면 반말에 은근히 선배라는 것으로 군기를 잡으려 든다.

하지만 패거리 문화 또는 집단 문화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지상정이라고 같은 학교, 같은 지역 출신, 같은 성씨면 사람 관계라는 게 조금은 더 살갑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동창회가 있어 학교 동창들 소식을 들을 수 있고 같은 성씨 끼리 좀 더 돕고 살면 좋은 일 아니겠는가. 더구나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돕자는 기사가 나가면 그 사람의 동문, 종친 등에서 발 벗고 나서는 걸 자주 본다. 

헌데 문제는 패거리 문화가 고소영 내각에서 처럼 공적인 일에 개입 될 때는 부작용이 매우 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수 대중이 입는 다는 것이다.

남해신문사 대표이사를 하던 때 이야기다.
어느 날 사장실로 한 씨 종친회 어른들이 몇 분 찾아 오셨다. 이야기인즉슨 군 의원을 준비 중인 종친 한 사람이 불미스런 일이 있었고 남해신문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 보도가 나가면 이후 선거에 지장이 있으니 종씨인 사장이 보도를 막아 달라는 거였다. 연세가 일흔이 넘는 문중 어른들, 게다가 사촌 형님을 비롯한 일가 몇 분도 같은 내용으로 전화를 하셨다. 

문중 어른들에게 별일 없을 것이라며 큰소리쳐 놓고 알아보니 건설사 간부인 문제의 종친이 폐교 하나를 매입해 도시 여관 업자에게 팔려다 들통이 난 사건이었다. 옛날 초등학교는 마을 주민들이 학교를 세울 터를 기부했거나 부역을 하다시피 해서 세운 학교다. 물론 교육부에 기부된지라 소유권은 교육청에 있으나 실제 주인은 주민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학교를 매입해 3년 이내에는 사적으로 매각할 수 없음에도 몰래 팔려하다 학교를 같이 세운 이웃 마을 주민들과 논쟁이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 무렵 남해는 학교 통폐합으로 초등학교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이런 일은 차후에도 발생할 우려가 있어 경각심을 주기위해 반드시 보도돼야 할 사안이었다. 며칠 후, 종친들의 청탁에도 관련 기사는 한 면 통으로 보도됐다. 

지역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헌데 최근 ‘국감장 유인촌 장관 욕설’ 관련 사진을 통신사인 연합뉴스와 뉴 시스에서 제공하지 않아 일간지들에서 사진을 받지 못해 사진 없이 기사만 나가는 일이 일어났다. 더구나 조선일보는 ‘에이 씨’는 투덜거림이지 욕설이 아니라는 어원을 분석하는 유 장관 해명성 기사를 내보냈다.

이런 사례가 혈연.지연.학연 따위와는 개념이 다르나 언론사와 당사자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방송이나 언론에서 반드시 보도해야 할 사안임에도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하는 경우, 그런 한편으론 대수롭지 않은 일임에도 펙터를 뻥튀기 하거나 “~카더라”보도, “아니면 말고”식 보도도 들어있어 언론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바른 언론은 어떤 경우에도 보도의 성역을 두어서는 안된다.
쓸것은 반드시 쓰는 것이 언론의 본디 몫이다.

광양신문이 창간 특집 286호를 발행하며 창간 9주년을 맞았다. 지난 9년을 반추하며 처음처럼 광양의 경전을 기록한다는 곧은 사명감이 늘 함께하길 바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