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칼럼] 정공지주(丁公之誅) : 정공을 죽이다
[고전칼럼] 정공지주(丁公之誅) : 정공을 죽이다
  • 광양뉴스
  • 승인 2019.07.26 18:44
  • 호수 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신하로서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또 다시 배신할 수 있으니 죽여서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비정한 이야기다.

때는 진(秦)나라가 기울어지고 유방(劉邦)과 항우(項羽)가 겨루던 초한쟁패 시기의 일이다. 초패왕항우의 부하로 있던 계포(季布)는 유방을 궁지로 몰아넣고, 여러 차례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최종 승리자는 유방이었다. 유방은 승리 후에도 계포가 괘씸했다. 승리는 했어도 계포는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금의 현상금을 걸어 계포의 체포령을 내렸다. 계포는 변장을 하고 숨어 다니다 복양의 평범한 농촌마을에 숨어 지냈다.

그러나 주씨는 계포의 목에 천금이 걸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음에는 모르는 척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주씨는 계포에게 말한다.“한나라에서 당신의 체포령이 긴급합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당신이 잡힐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내 말을 들어 주신다면 내 뜻을 말씀드리고 내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죽겠소.” 계포는 어차피 죽을 몸 흔쾌히 승낙했다.

주씨는 계포의 머리를 깎아 죄인으로 위장하고 수레에 태워 노나라 주가로 데려가 팔겠다고 했다. 주가는 계포가 현상금이 걸린 죄인임을 알면서도 사들여 농장에서 일을 하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 아들들에게 농사일은 이 사람에게 물어가며 하고 식사도 항상 함께 하도록 명했다.

주가는 어느 날 유방의 친구이자 한나라 개국공신 여음후 등공 하후영(夏候?)을 찾아가,“계포가 무슨 죄인이기에 현상금까지 걸어가며 찾으려고 합니까?” “계포는 주상의 원수나 다름이 없습니다. 항우 휘하에 있을 때 주상을 몹시 괴롭혔으므로 주상께서는 한이 맺혀 있습니다.”“그렇다면 그대는 계포를 어떻게 보십니까?”“그야 유능한 장군이지요.”“신하란 그때그때 주군을 위해 힘을 다 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지금 주상은 천하를 소유하고도 사적 감정으로 천금씩이나 걸어 사람을 체포하려고 하니 이는 너그럽지 못한 처사라고 봅니다. 만약 유능한 장수가 북쪽의 호(胡)나 남쪽의 월(越)나라로 달아난다면 오자서(伍子胥)가 초나라를 떠나 오나라를 키워 공격해 망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대는 왜 주상을 설득하지 못합니까?” 하후영은 계포의 소재를 주가가 알고 있음을 짐작하고 기다려 보라고 했다.

등공은 주가가 한말을 그대로 고조 유방에게 했다. 고조는 그 말을 듣고 계포를 특별 사면해 주었다. 주가의 기지로 계포는 자유로운 몸이 되고 낭중(郎中)의 벼슬까지 하사 받았다. 그러나 계포의 외삼촌인 정공(丁公)은 계포와 같이 항우의 장수였는데, 한번은 고조를 궁지에 넣고 육박전을 벌이다 고조가 위급하게 되었다.

고조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정공에게 사정을 했다. 이때 정공을 고조 유방을 죽일 수도 있었으나, 고조를 죽이지 않고 도망하도록 배려하였다. 그 뒤 항우가 멸망하고 고조가 천자가 되자, 정공은 옛정을 생각해 벼슬자리를 기대하며 고조를 찾아갔다.

고조는 정공을 구속하고 모욕을 주려고 조리를 돌리게 했다.“이자는 항우의 신하된 자로 자기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아 항우를 망하게 했다. 참형에 처하라. 후세에는 정공을 본받는 자가 없게 하기 위함이니라.”그리하여 정공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정공이 궁지에 몰린 유방을 살려주었으면 차라리 항우를 배반하고 유방에게 왔어야 했다. 그런데 망한 뒤에 찾아 왔기 때문에 유방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시대에도 이런 일은 종종 볼 수 있다. 시쳇말로 회색분자 즉 기회주의자를 말하는 것이다. 같은 무리에 있어도 의견은 다를 수가 있다. 그러나 정체성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자기의 길을 확실하게 밝히고, 뜻이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떠나는 것이 옳지 않을까.